1509년은 유럽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맞이한 해였다. 4월 21일 잉글랜드의 헨리 7세가 사망하고 그의 차남인 헨리 8세가 국왕으로 즉위하였다. 이는 튜더 왕조의 기틀을 확고히 다지는 계기가 되었으며, 헨리 8세는 같은 해 6월 형인 아서의 미망인이었던 아라곤의 캐서린과 결혼하며 스페인과의 동맹 관계를 공고히 하였다. 헨리 8세의 통치는 향후 영국의 종교 개혁과 해군력 강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인도양에서는 포르투갈 제국이 해상 패권을 장악하기 위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2월 3일, 인도 서해안의 디우 인근 해역에서 포르투갈 함대와 이집트 맘루크 왕조, 구자라트 술탄국, 오스만 제국 등이 연합한 함대 사이에 '디우 해전'이 발생하였다. 프란시스코 드 알메이다가 이끄는 포르투갈 해군은 뛰어난 함포 전술을 앞세워 연합군을 격파하였으며, 이 승리를 통해 포르투갈은 향후 약 1세기 동안 인도양 무역로를 독점하는 발판을 마련하였다.
유럽의 지성계와 예술계에서도 주목할 만한 사건이 있었다. 네덜란드의 인문주의자 에라스무스가 그의 대표작인 '우신예찬'을 집필하기 시작한 해가 바로 1509년이다. 이 작품은 당시 가톨릭교회의 부패와 사회적 모순을 풍자적으로 비판하여 유럽 전역에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훗날 종교 개혁의 사상적 토대를 제공하였다. 또한 이탈리아에서는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 작업을 지속하며 르네상스 예술의 정점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조선에서는 중종 4년에 해당하는 시기로, 중종반정 이후 정국을 안정시키기 위한 노력이 지속되었다. 중종은 연산군 시대의 폐단을 시정하고 성리학적 통치 규범을 재확립하기 위해 힘썼으며, 이 과정에서 신진 사림 세력이 중앙 정계에 서서히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같은 해 조선 정부는 명나라로부터 중종의 국왕 즉위를 공식적으로 승인하는 고명을 받아 대외적인 정통성을 확보하였다.
동아시아의 명나라는 정덕제 4년을 맞이하고 있었다. 당시 명나라는 환관 유근이 권력을 장악하여 조정의 기강이 흔들리는 부작용을 겪기도 하였으나, 사상적으로는 양명학의 창시자인 왕양명이 귀양지였던 용장에서 깨달음을 얻고 자신의 철학 체계를 구축해 나가던 시기였다. 이처럼 1509년은 전 세계적으로 구질서가 유지되는 가운데 새로운 시대의 흐름이 태동하던 역동적인 시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