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6년은 15세기 후반의 평범하면서도 중요한 역사적 사건들이 교차한 시기였다. 유럽에서는 신성 로마 제국의 권력 구도에 큰 변화가 있었다. 2월 16일, 합스부르크 가문의 막시밀리안 1세가 프랑크푸르트에서 로마왕으로 선출되었으며, 같은 해 4월 9일 아헨에서 대관식을 거행했다. 이는 합스부르크 가문이 유럽의 패권을 장악하고 제국의 기틀을 공고히 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또한 영국에서는 장미 전쟁을 종결지은 헨리 7세가 요크의 엘리자베스와 결혼함으로써 랭커스터 가문과 요크 가문의 결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으며, 이는 튜더 왕조의 안정기를 여는 서막이 되었다.
문화와 종교사적 측면에서 1486년은 악명 높은 기록이 남겨진 해이다. 도미니크회 수도사인 하인리히 크라머가 저술한 '마녀의 망치(Malleus Maleficarum)'가 이 시기에 처음 출판되었다. 이 책은 마녀를 식별하고 처벌하는 법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저술로, 이후 수 세기 동안 유럽 전역에서 마녀사냥이 광범위하게 확산되는 데 결정적인 이론적 근거를 제공했다. 인쇄술의 발달은 이러한 위험한 사상이 빠르게 전파되는 토대가 되었으며, 이는 당시 사회의 종교적 광기와 지식 전달 기술이 결합한 비극적인 단면을 보여준다.
동양의 조선 왕조에서는 성종 17년에 해당하는 해였다. 성종의 치세 아래 유교적 통치 질서와 국가의 제도적 기틀이 완성 단계에 접어들던 시기였다. 이 해에는 경국대전을 바탕으로 한 법치주의 체제가 확고히 자리 잡았으며, 홍문관을 중심으로 한 성종의 학문 장려 정책이 활발히 전개되었다. 또한 사림 세력이 중앙 정계에 진출하여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하면서 기존 훈구 세력과의 정치적 긴장감이 형성되는 초기 징후가 나타나기도 했다. 대외적으로는 여진족과의 관계를 조율하며 북방 경계 안정을 꾀하는 등 내실을 다지는 데 주력했다.
아메리카 대륙과 아프리카 해안에서도 주목할 만한 변화가 있었다. 아즈텍 제국에서는 제7대 통치자였던 티조크가 사망하고, 그의 동생인 아위초틀이 새로운 통치자로 즉위했다. 아위초틀은 아즈텍 제국의 영토를 역대 최대 규모로 확장하고 수도 테노치티틀란의 대사원을 완공하는 등 강력한 군사적·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다. 한편, 포르투갈의 탐험가 디오구 캉은 서아프리카 연안을 탐험하며 남위 21도 부근의 크로스곶에 도달했다. 이는 유럽인들의 아프리카 탐사 역사에서 가장 남쪽까지 도달한 기록 중 하나로, 이후 인도 항로 개척의 중요한 발판이 되었다.
명나라에서는 성화제의 치세가 지속되고 있었으며, 환관들의 권력이 비대해짐에 따라 조정 내부의 부패와 혼란이 가중되던 시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나라의 경제적·문화적 영향력은 동아시아 전역에 여전히 강력하게 미치고 있었다. 이처럼 1486년은 유럽의 근대 국가 기틀 마련, 마녀사냥의 이론적 정립, 조선의 유교적 통치 완성, 그리고 대항해 시대를 향한 서구의 팽창과 아메리카 문명의 확장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전환기적 해로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