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1

1481년은 15세기에 속하며, 율리우스력으로 월요일에 시작하는 평년이다. 동아시아의 간지 기년법으로는 신축년(辛丑年)에 해당하며 소의 해이다. 이 해는 동양과 서양 모두에서 중요한 군주의 교체나 국가적 편찬 사업의 완성이 이루어진 시기로, 각 지역의 정치적, 문화적 기반이 공고해지거나 변화를 맞이한 분기점으로 평가받는다.

조선에서는 성종 12년에 해당하며, 조선 전기 지리지의 집대성이라 할 수 있는 《동국여지승람》 50권이 완성되었다. 성종은 서거정, 노사신, 강희맹 등 당대 최고의 학자들에게 명하여 팔도의 지리, 풍속, 인물, 성곽 등을 조사하고 정리하게 했다. 1481년에 완성된 이 초간본은 이후 성종 17년과 중종 대에 수정 및 증보를 거쳐 《신증동국여지승람》으로 발전하게 되며, 조선의 국토 인식과 중앙 집권적 통치 체제를 확립하는 데 필수적인 자료가 되었다.

서아시아와 유럽의 경계인 오스만 제국에서는 제국의 확장을 주도했던 정복자 메흐메드 2세가 5월에 사망했다.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켜 비잔틴 제국을 멸망시켰던 그의 죽음은 유럽 기독교 세계에 큰 안도감을 주었다. 메흐메드 2세의 뒤를 이어 아들 바예지드 2세가 술탄으로 즉위했으나, 또 다른 아들인 젬 술탄과의 왕위 계승 분쟁이 발생하여 제국 내부는 잠시 혼란에 빠졌다. 이 사건은 오스만 제국의 서유럽 침공 속도를 일시적으로 늦추는 결과를 낳았다.

유럽의 포르투갈 왕국에서는 아폰수 5세가 8월에 사망하고 그의 아들 주앙 2세가 왕위에 올랐다. 주앙 2세는 왕권을 강력하게 강화하고 귀족 세력을 견제하는 한편, 아프리카 서해안 탐험을 적극적으로 후원했다. 그의 즉위는 포르투갈이 대항해시대를 주도하며 해상 제국으로 성장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으며, 훗날 희망봉 발견과 인도 항로 개척의 기틀이 1481년을 기점으로 더욱 확고해졌다.

프랑스에서는 루이 11세의 통치 하에 중요한 영토 통합이 이루어졌다. 멘과 프로방스의 백작인 샤를 3세가 후사 없이 사망하면서, 1481년 12월 프로방스 지역이 프랑스 왕실로 귀속되었다. 이를 통해 프랑스는 지중해의 중요한 항구 도시인 마르세유와 툴롱을 확보하게 되었으며, 이는 프랑스가 지중해 무역권으로 진출하고 근대적인 영토 국가의 형태를 갖추는 데 중요한 지정학적 사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