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8년은 15세기 후반에 속하는 해로, 서양력으로는 1478년, 육십갑자로는 무술년(戊戌年)이다. 한국사에서는 조선 성종 9년에 해당하며, 이 시기는 조선의 문물 제도가 정비되고 유교 문화가 꽃피던 때였다. 세계적으로는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격동기였으며, 스페인의 종교적 통합과 러시아의 영토 확장이 일어나는 등 각 지역에서 중앙 집권화와 권력 투쟁이 심화되던 시기였다.
조선에서는 성종의 명에 따라 서거정(徐居正) 등이 중심이 되어 방대한 규모의 시문 선집인 《동문선(東文選)》을 편찬하여 12월에 완성했다. 《동문선》은 신라, 고구려, 백제 시대부터 고려를 거쳐 조선 초기에 이르기까지 약 500여 명의 작가가 쓴 시와 산문 4,302편을 수록하고 있다. 이는 중국의 문학과는 구별되는 우리 문학의 독자성을 확립하고, 역대 문장들을 정리하여 후세에 전하려는 자주적인 문화 의식의 결과물로 평가받는다. 또한 성종은 이 시기에 홍문관을 육성하고 경연을 활성화하여 유교적 통치 질서를 확립하는 데 주력했다.
유럽 이탈리아의 피렌체 공화국에서는 메디치 가문의 독주에 반발한 '파치 음모(Pazzi conspiracy)' 사건이 1478년 4월 26일에 발생했다. 교황 식스토 4세의 지지를 받은 파치 가문은 피렌체 대성당에서 미사를 드리고 있던 로렌초 데 메디치와 그의 동생 줄리아노를 습격했다. 이 과정에서 줄리아노는 살해당했으나 로렌초는 부상을 입은 채 탈출에 성공했다. 이 사건은 피렌체 시민들의 분노를 일으켜 음모 가담자들에 대한 가혹한 처형으로 이어졌으며, 결과적으로 메디치 가문의 피렌체 지배권을 더욱 공고히 하는 계기가 되었다.
스페인 역사에서도 1478년은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카스티야의 이사벨 1세와 아라곤의 페르난도 2세는 교황 식스토 4세로부터 칙서를 받아 스페인 종교재판소(Spanish Inquisition)를 설립할 권한을 획득했다. 이는 표면적으로는 가톨릭으로 개종한 유대인(콘베르소)과 무슬림들의 신앙 진정성을 심사하기 위함이었으나, 실질적으로는 왕권을 강화하고 반대 세력을 억압하며 재산을 몰수하는 정치적 도구로 활용되었다. 스페인 종교재판은 이후 수세기 동안 종교적 불관용의 상징으로 역사에 남게 되었다.
러시아에서는 모스크바 대공국의 이반 3세가 노브고로드 공화국을 완전히 병합하며 러시아 통일의 기틀을 다졌다. 1478년 1월, 노브고로드는 모스크바 군대에게 항복했고, 이반 3세는 노브고로드의 자치와 자유를 상징하던 '베체(민회)'의 종을 모스크바로 압수해 갔다. 이는 몽골의 지배에서 벗어나 강력한 중앙 집권 국가를 건설하려던 모스크바 대공국의 팽창 정책이 결정적인 성과를 거둔 사건으로, 이후 러시아 차르국 형성의 중요한 발판이 되었다. 또한 같은 해 2월에는 영국의 인문주의자이자 《유토피아》의 저자인 토마스 모어가 런던에서 출생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