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8년은 서기 15세기의 후반기에 해당하며, 조선 왕조에서는 성종 9년에 해당하는 해이다. 이 해 조선에서는 유교 정치의 기틀을 확립하기 위한 제도적 정비가 활발히 이루어졌다. 특히 세조에 의해 폐지되었던 집현전의 기능을 계승한 홍문관(弘文館)이 궁중에 설치되어 국왕의 자문 기관이자 학술 연구 기관으로서 본격적인 역할을 시작했다. 이는 훈구 세력을 견제하고 신진 사림 세력을 등용하여 왕도 정치를 실현하려 했던 성종의 정치적 의지가 반영된 결과로 평가받는다.
유럽에서는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중심지였던 피렌체에서 중대한 정치적 사건이 발생했다. 1478년 4월 26일, 메디치 가문의 통치에 반대하던 파치 가문이 교황청의 묵인 하에 로렌초 데 메디치와 그의 동생 줄리아노 데 메디치를 암살하려 시도한 '파치 음모'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으로 줄리아노는 현장에서 사망했으나 로렌초는 극적으로 살아남았으며, 이후 배후 세력에 대한 잔혹한 보복과 함께 피렌체 내 메디치 가문의 권력은 더욱 공고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이베리아반도에서는 가톨릭 군주인 카스티야의 이사벨 1세와 아라곤의 페르난도 2세가 교황 식스토 4세로부터 칙령을 받아 스페인 종교재판소를 창설했다. 이는 초기에는 주로 가톨릭으로 개종한 유대인들의 신앙 진위 여부를 감시하기 위한 목적이었으나, 이후 국왕의 권력을 강화하고 국가적 통합을 이루기 위한 강력한 종교적, 정치적 통제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스페인 종교재판은 이후 수세기 동안 유럽의 종교사와 정치사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동유럽에서는 모스크바 대공국의 이반 3세가 노브고로드 공화국을 완전히 정복하여 영토를 병합했다. 이반 3세는 노브고로드의 자치권을 박탈하고 모스크바 중앙 집권 체제 하에 편입시킴으로써 '모든 러시아의 지배자'로서의 위상을 굳건히 했다. 이는 몽골의 지배에서 완전히 벗어나 러시아 통일 국가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으며, 모스크바가 동북 유럽의 강력한 정치적 중심지로 부상하는 기틀이 되었다.
문화와 학문 분야에서는 인문주의와 예술의 발전이 지속되었다. 훗날 『유토피아』의 저자로 명성을 떨치게 되는 영국의 인문주의자이자 정치가 토마스 모어가 1478년 2월 7일 런던에서 태어났다. 또한 이탈리아 베네치아 화파의 거장으로 꼽히는 화가 조르조네가 이 해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시기 유럽은 금속 활자 인쇄술의 보급으로 지식의 전파가 가속화되었으며, 고전 문헌에 대한 연구와 예술적 혁신이 상호작용하며 르네상스의 전성기로 향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