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7년은 서력 기원을 기준으로 1417번째 해이다. 15세기의 17번째 해에 해당하며, 육십갑자로는 정유년(丁酉年)이다. 단기 3750년, 한국사에서는 조선 태종 17년, 중국사에서는 명나라 영락(永樂) 15년, 일본사에서는 오에이(応永) 24년에 해당한다. 이 시기는 동아시아에서는 명나라와 조선의 국가 체제가 안정기에 접어들던 때였으며, 서유럽에서는 중세 교회의 대분열이 종식되는 등 종교적, 정치적 격변이 일어난 해이다.
조선 역사에서 1417년은 영토 관리와 국방 강화 측면에서 중요한 기록이 남아 있는 해이다. 태종은 왜구의 침입을 우려하여 섬을 비워두는 공도(空島) 정책을 시행 중이었는데, 이해에 김인우(金麟雨)를 우산무릉등처안무사(于山武陵等處按撫使)로 임명하여 우산국(현재의 울릉도와 독도 지역)을 시찰하게 했다. 김인우는 울릉도에 거주하던 주민들을 육지로 쇄환(刷還)하고, 해당 지역의 토산물을 바치며 울릉도의 현황을 보고했다. 이는 조선 조정이 울릉도와 독도 지역을 행정적으로 인식하고 관리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역사적 근거로 평가받는다. 또한, 태종은 이해에 지방관의 근무 성적을 평가하는 등 중앙 집권적 통치 체제를 더욱 견고히 다졌다.
서양 역사, 특히 기독교 역사에서 1417년은 '서구 대이교(Western Schism)'가 사실상 종결된 기념비적인 해이다. 1378년부터 로마와 아비뇽에 각각 교황이 존재하는 분열 사태가 지속되었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소집된 콘스탄츠 공의회(Council of Constance)가 절정에 달했다. 공의회는 당시 난립하던 세 명의 교황(그레고리오 12세, 베네딕토 13세, 요한 23세)을 폐위하거나 사임을 유도하고, 1417년 11월 11일 오도네 콜론나 추기경을 새로운 교황 마르티노 5세로 선출했다. 이로써 약 40년 가까이 지속된 가톨릭교회의 대분열 시대가 막을 내리고 교황권이 다시 하나로 통합되었다.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백년 전쟁(Hundred Years' War) 측면에서도 1417년은 군사적으로 중요한 해였다. 아쟁쿠르 전투(1415)에서 승리한 영국의 헨리 5세는 1417년에 대규모 병력을 이끌고 노르망디에 재상륙했다. 헨리 5세는 단순한 약탈 원정이 아니라 영구적인 정복을 목표로 삼았으며, 주요 도시인 캉(Caen)을 함락시켰다. 이는 영국이 노르망디 지역을 체계적으로 장악하기 시작한 시점으로, 이후 프랑스 왕실을 더욱 궁지로 몰아넣는 계기가 되었다.
문화 및 사회적 측면에서 1417년은 르네상스 인문주의의 발전과도 연결된다. 이탈리아의 인문주의자 포지오 브라콜리니(Poggio Bracciolini)는 1417년 독일의 수도원 도서관을 탐방하던 중, 고대 로마의 시인 루크레티우스의 철학 서사시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De rerum natura)》의 필사본을 발견했다. 오랫동안 잊혔던 이 텍스트의 재발견은 에피쿠로스 학파의 원자론과 유물론적 사상을 다시 유럽 지성계에 소개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훗날 르네상스 철학과 근대 과학 사상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