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0년은 세계사적으로 거대한 전환점이 되는 해였다. 특히 중동 지역에서는 이슬람 제국의 패권이 옴미아드 왕조에서 아바스 왕조로 넘어가는 결정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1월에 벌어진 자브 강 전투에서 아바스 가문이 이끄는 반란군이 옴미아드 왕조의 마지막 칼리프인 마르완 2세를 격파하며 승기를 잡았다. 이로써 다마스쿠스를 중심으로 하던 옴미아드 왕조가 멸망하고, 이후 바그다드를 거점으로 삼는 아바스 왕조가 개창되어 이슬람 황금기의 서막을 알렸다.
동아시아의 당나라는 현종의 치세 아래 표면적으로는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고구려 유민 출신의 장군 고선지는 서역 원정을 통해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당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었다. 750년경 고선지는 석국(타슈켄트)을 공격하여 국왕을 사로잡는 등 군사적 성과를 거두었으나, 이는 이듬해 발생하는 탈라스 전투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당시 당나라는 경제적 풍요와 문화적 융성함이 절정에 달해 있었으나, 내부적으로는 지방 절도사들의 세력이 커지며 안녹산의 난을 예고하는 사회적 모순이 심화되던 시기였다.
한반도의 통일신라는 경덕왕 9년에 해당하며, 불교 문화와 국가 체제가 고도로 정비된 안정기였다. 경덕왕은 한화(漢化)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여 전국의 행정 구역 명칭을 중국식 한자명으로 변경하고 중앙 집권적 관료 체제를 강화하고자 노력했다. 또한 이 시기는 불국사와 석굴암의 창건이 구체화되던 시점으로, 신라 불교 예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건축물들이 조성되기 시작한 역사적 배경을 갖는다. 신라는 당나라 및 왜와 활발히 교류하며 국제적인 문물을 수용하고 독자적인 문화를 꽃피웠다.
유럽에서는 프랑크 왕국의 메로빙거 왕조가 종말을 고하기 직전의 긴박한 시기였다. 실권자였던 궁재 피핀 3세는 교황청과의 결탁을 통해 왕위를 찬탈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으며, 이는 751년 카롤링거 왕조의 개창으로 이어졌다. 비잔티움 제국에서는 콘스탄티누스 5세가 성상 파괴 운동을 강행하며 교회와 치열한 대립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러한 갈등은 로마 교황청이 비잔티움 제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프랑크 왕국과 손을 잡게 만드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으며, 서유럽의 독자적인 발전 토대를 마련했다.
이처럼 750년은 중동, 동아시아, 유럽 등 세계 주요 지역에서 기존의 질서가 재편되고 새로운 권력 구조가 형성되는 징검다리 역할을 한 해였다. 이슬람의 정권 교체는 동서 교역의 흐름을 바꾸어 놓았고, 동아시아와 서유럽의 정치적 변동은 각 지역의 중세 사회를 형성하는 중요한 기틀이 되었다. 세계사의 각 축이 정점에 도달함과 동시에 새로운 시대적 과제와 갈등이 배태된 해로서 그 의의가 매우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