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3년

1313년은 율리우스력으로 월요일에 시작하는 평년이며, 14세기 초반에 해당하는 연도이다. 동아시아에서는 원나라의 간섭기가 이어지던 고려와 몽골 제국의 중심인 원나라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으며, 유럽에서는 신성 로마 제국과 교황청을 둘러싼 복잡한 정치적 갈등이 전개되고 있었다. 이 해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각 국가의 권력 교체와 중대한 제도적 변화가 뚜렷하게 나타난 시기였다.

한반도의 고려에서는 중대한 왕위 교체가 일어났다. 원나라에 머물며 국정을 살피던 제26대 국왕 충선왕이 조카인 연안군 왕고에게 왕위를 물려주려 했으나, 고려 신료들의 반대와 원나라의 개입으로 인해 둘째 아들인 강릉대군에게 양위했다. 이로써 강릉대군이 제27대 국왕 충숙왕으로 즉위하였다. 그러나 충선왕은 양위 후에도 심양왕의 지위를 유지하며 상왕으로서 원나라 수도 연경(베이징)에 머물며 실질적인 권력을 행사했고, 이는 향후 고려 왕실 내의 심양왕 계승을 둘러싼 복잡한 정치적 갈등의 불씨가 되었다.

중국을 지배하던 원나라에서는 인종(아유르바르와다)의 통치 아래 역사적인 제도적 부활이 선포되었다. 1313년, 원 인종은 오랫동안 폐지되었던 과거제의 부활을 명하는 조칙을 내렸다. 이때 부활한 과거제는 남송 시대의 주자가 집대성한 성리학(사서집주)을 시험의 핵심 기준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큰 역사적 의의를 지닌다. 이 조치는 몽골 지배층이 한족 지식인들을 체제 내로 포섭하려는 유화 정책의 일환이었으며, 이후 성리학이 원나라뿐만 아니라 고려와 조선 등 동아시아 국가들의 관학으로 확고히 자리 잡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유럽에서는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하인리히 7세의 죽음이 지정학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탈리아 원정을 통해 제국의 권위를 다지고 교황파(구엘프)와 황제파(기벨린) 간의 오랜 갈등을 잠재우려 했던 하인리히 7세는 1313년 8월, 이탈리아 시에나 인근에서 말라리아 감염으로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그의 죽음은 이탈리아 내 황제파 세력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었으며, 신성 로마 제국 내부에서는 차기 황제 자리를 두고 바이에른의 루트비히 4세와 합스부르크 가문의 프리드리히 미남왕 사이의 기나긴 왕위 계승 전쟁이 촉발되었다.

한편, 이탈리아 르네상스 문학의 선구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지반니 보카치오가 1313년에 피렌체 인근에서 태어났다. 훗날 《데카메론》을 저술하여 중세 유럽의 문학적 전통을 혁신하게 되는 그의 탄생은, 14세기 유럽이 중세의 낡은 틀을 서서히 깨고 새로운 인문주의적 조류를 형성해 나가는 맹아가 싹트던 시기였음을 보여준다. 결과적으로 1313년은 유라시아 대륙 전역에 걸쳐 몽골 제국의 팍스 몽골리카(Pax Mongolica)가 유지되는 가운데, 각 지역의 내부적인 정치 지형과 사상적 기반이 새롭게 재편되는 중요한 전환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