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0년

1270년은 13세기 후반에 접어드는 시기로, 유라시아 대륙 전역에서 몽골 제국의 패권이 공고해지며 이에 따른 각국의 정치적 격변이 일어난 해이다. 한반도의 고려에서는 장기간의 대몽 항쟁이 전환점을 맞이하여 국가 체제의 큰 변화가 있었으며, 유럽과 중동 지역에서는 십자군 전쟁의 막바지 국면이 전개되었다. 아프리카 왕조의 교체 등 세계사적으로도 굵직한 사건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시기이다.

한국사에서 1270년(고려 원종 11년)은 무신정권의 완전한 종식과 대몽 항쟁의 새로운 국면인 삼별초의 항쟁이 시작된 결정적인 해이다. 고려 원종은 몽골의 요구와 친몽 정책의 일환으로 1232년 이래의 임시 수도였던 강화도를 떠나 옛 수도인 개경으로 환도(개경 환도)를 단행했다. 이는 사실상 몽골에 대한 복속이자 원 간섭기의 시작을 의미했다. 그러나 대몽 항쟁의 주축이자 무신정권의 군사적 기반이었던 삼별초는 개경 환도와 부대 해산 명령에 반발하여 배중손의 지휘 아래 반란을 일으켰다. 이들은 왕족인 승화후 온을 새로운 왕으로 추대하고, 진도로 근거지를 옮겨 몽골과 고려 조정에 대항하는 장기 항전을 시작했다.

또한 1270년은 고려의 북방 영토 일부가 몽골의 직할령으로 넘어간 해이기도 하다. 전년도인 1269년, 서북면 지역에서 최탄 등이 반란을 일으켜 서경(현재의 평양)을 비롯한 북계 54개 성과 해명 6개 성을 몽골에 바치며 투항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몽골 제국은 1270년 서경에 자비령 이북의 영토를 관할하는 동녕부(東寧府)를 설치했다. 이로 인해 고려는 영토의 상당 부분을 상실하게 되었으며, 이후 이 지역은 충렬왕 대인 1290년에 반환될 때까지 몽골의 직접 지배를 받게 되었다.

서양사에서는 프랑스의 국왕 루이 9세가 주도한 제8차 십자군 원정이 있었던 해이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루이 9세는 이슬람 세력을 견제하고 성지 탈환의 발판을 마련할 목적으로 다시 한번 십자군을 일으켜 북아프리카의 튀니스(현재의 튀니지)로 향했다. 그러나 튀니스에 상륙한 십자군 진영 내에 이질과 발진티푸스 등의 전염병이 크게 유행하였다. 결국 1270년 8월, 십자군을 이끌던 루이 9세 본인이 전염병으로 사망하면서 원정은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철수하게 되었다. 이 사건은 사실상 서유럽 국가들이 주도한 대규모 십자군 운동이 쇠퇴하는 결정적인 계기로 평가받는다.

아프리카 역사에서도 1270년은 중요한 왕조 교체기였다. 에티오피아 지역에서는 예쿠노 아믈라크(Yekuno Amlak)가 자그웨(Zagwe) 왕조의 마지막 왕을 물리치고 새롭게 솔로몬 왕조를 개창했다. 스스로를 성경에 등장하는 솔로몬 왕과 시바의 여왕의 직계 후손이라 주장한 이 왕조는 전통성을 확립하며 이후 1974년 군부 쿠데타로 멸망할 때까지 에티오피아 제국을 통치하는 기틀을 마련했다. 한편, 동아시아에서는 몽골 제국의 제5대 대칸 쿠빌라이 칸이 남송 정벌을 지속하며 중국 대륙 전체의 지배권을 확립해 나가고 있었으며, 이듬해인 1271년 국호를 '대원(大元)'으로 제정하기 위한 정치적, 제도적 정지 작업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