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0

1290년은 13세기의 마지막 10년을 여는 해로, 서기 연대체계에서 평년이다. 당시 세계는 몽골 제국의 영향권 아래 놓인 아시아와 중세 봉건제가 유지되던 유럽, 이슬람 왕조들의 교체기가 진행되던 서아시아 등으로 나뉘어 격동의 시기를 겪고 있었다. 특히 동아시아에서는 원나라의 지배력이 공고해지는 가운데 주변국들과의 복잡한 관계가 지속되었고, 서구에서는 국가의 기틀을 다지기 위한 법적, 정치적 조치들이 시행되었다.

고려에서는 충렬왕 16년에 해당하는 해였다. 이해에는 몽골의 반란군인 합단(哈丹)의 무리가 고려 북방으로 침입하여 큰 혼란이 발생했다. 합단은 원나라에 반기를 든 세력으로, 원의 군대에 밀려 고려 영토 내로 진입하여 약탈과 파괴를 일삼았다. 이에 고려는 원나라와 연합군을 결성하여 이들을 격퇴하기 위한 군사적 대응에 나섰으나, 전 국토가 전쟁의 위협에 시달리며 민생에 큰 타격을 입었다.

유럽의 영국에서는 국왕 에드워드 1세가 유대인 추방령(Edict of Expulsion)을 공포하였다. 이 조치로 인해 영국 내의 모든 유대인은 자산을 몰수당한 채 강제로 국외로 떠나야 했으며, 이는 유럽 역사상 대규모 유대인 박해의 주요 사례 중 하나로 기록되었다. 또한 북방의 스코틀랜드에서는 노르웨이의 처녀 왕비로 불리던 마거릿이 사망하면서 왕위 계승 서열이 모호해졌고, 이는 장차 스코틀랜드 왕위 계승 분쟁과 독립 전쟁으로 이어지는 정치적 혼란의 서막이 되었다.

인도 대륙에서도 중요한 정권 교체가 일어났다. 인도에서는 델리 술탄국의 노예 왕조가 멸망하고 할지 왕조(Khalji dynasty)가 개창되었다. 자랄 웃딘 할지가 술탄의 자리에 오르며 시작된 이 왕조는 이후 인도 북부의 세력을 확장하고 몽골의 침입을 방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한편 원나라에서는 쿠빌라이 칸의 치세 아래 대운하 건설과 같은 대규모 토목 사업이 진행되며 제국의 내실을 다지던 시기였다.

문화적으로는 이탈리아의 시인 단테 알리기에리의 영원한 연인이자 영감의 원천이었던 베아트리체 포르티나리가 이해 6월에 사망했다. 그녀의 죽음은 단테의 문학 세계에 깊은 영향을 미쳤으며, 훗날 그의 걸작인 '신곡'과 '신생'의 창작 동기가 되었다. 또한 노르웨이에서는 호콘 5세가 즉위하기 전 단계의 정치적 변화가 있었고, 동남아시아의 자바 섬 등지에서도 지역 왕조 간의 세력 다툼이 활발히 전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