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0년

서기 290년은 3세기의 막바지에 해당하는 시기로, 전 세계적으로 고대 제국들의 권력 구조가 재편되거나 내부적인 변화를 겪던 시점이다. 서구에서는 로마 제국이 사두 정치 체제의 기틀을 다지고 있었으며, 동양에서는 위진남북조 시대의 전조가 되는 중요한 사건들이 전개되었다. 이 해는 표면적으로는 제국들의 안정이 유지되는 듯 보였으나, 내부적으로는 이후 발생할 거대한 혼란의 씨앗이 뿌려진 시기이기도 하다.

로마 제국에서는 공동 황제인 디오클레티아누스와 막시미아누스가 밀라노에서 회담을 가졌다. 이는 제국의 광대한 영토를 효율적으로 통치하고 방어하기 위한 전략적 협의의 일환이었다. 두 황제는 로마의 군사적 안정을 도모하고 게르만 부족 및 사산조 페르시아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방안을 논의했다. 당시 로마는 '3세기의 위기'를 극복하고 체제 정비를 통해 제국의 수명을 연장하려 노력하고 있었으며, 황제들 간의 이러한 유대는 사두 정치 체제로 이행하는 중요한 과정이었다.

중국 대륙에서는 서진의 건국자인 무제 사마염이 사망하면서 정세가 급변했다. 사마염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인 혜제 사마충이 즉위했으나, 그는 통치 능력이 현저히 부족한 인물이었다. 이로 인해 황후 가남풍을 비롯한 외척 세력과 종실 제왕들 사이에서 본격적인 권력 투쟁이 시작되었다. 이러한 내부 분열은 훗날 중국을 극심한 혼란에 빠뜨린 ‘팔왕의 난’과 영가의 난으로 이어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으며, 서진의 국력은 이 시점을 기해 급격히 쇠퇴하기 시작했다.

한반도의 삼국 시대는 각국이 중앙 집권 체제를 공고히 하며 영토 확장을 도모하던 시기였다. 고구려에서는 서천왕 21년으로, 북방 민족과의 접촉 속에서 국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백제는 책계왕 5년이었으며, 신라는 유례 이사금 7년에 해당했다. 이 시기 삼국은 대외적인 대규모 전쟁보다는 내부적인 행정 정비와 농업 생산력 유지에 주력했다는 특징이 있다. 또한 주변국과의 외교적 긴장 상태를 유지하며 영토 경계에서의 소규모 충돌에 대비하던 시기였다.

사산조 페르시아에서는 바흐람 2세가 통치하고 있었다. 당시 페르시아는 로마 제국과 동방의 패권을 놓고 경쟁 관계에 있었으나, 내부적인 반란과 권력 투쟁으로 인해 로마에 대해 대대적인 공세를 펼치기에는 제약이 따르는 상황이었다. 이처럼 290년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강력한 군주의 유명이 다하거나 새로운 통치 체제가 시험대에 오르는 등, 고대 세계의 질서가 재편되는 전환점으로서의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