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1

1251년은 13세기 중반에 해당하는 연도로, 유라시아 대륙 전역에서 정치적 권력 재편과 종교적, 문화적 기념비가 세워진 중대한 해이다. 동아시아에서는 몽골 제국의 침략에 맞선 고려의 국가적 대응이 결실을 맺었으며, 동시에 몽골 제국 내부에서는 새로운 대칸이 즉위하여 제국의 팽창 방향이 새롭게 설정되었다. 유럽에서는 십자군 전쟁의 여파로 인한 민중의 동요와 각국의 왕실 간 결속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한국사에서 1251년은 고려 시대 최고이자 최대의 불교 문화유산인 팔만대장경의 판각이 공식적으로 완료된 역사적인 해이다. 고려 고종 38년인 이 해에 완성된 대장경은 몽골의 2차 침입 당시 소실된 초조대장경을 대신하기 위해 1236년 강화도에 대장도감을 설치하고 만들기 시작한 지 16년 만의 성과였다. 1251년 가을, 고려 조정은 대장경의 완성을 축하하기 위해 국왕과 백관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한 경찬회를 열었다. 이는 부처의 힘을 빌려 국난을 극복하려는 대몽 항쟁기 고려인의 정신적 결속력을 상징하며, 당대 세계 최고 수준의 목판 인쇄 기술을 입증하는 사건이다.

같은 해 몽골 제국에서는 권력의 중심축이 이동하는 결정적인 정권 교체가 일어났다. 칭기즈 칸의 넷째 아들 툴루이의 장남인 몽케 칸이 쿠릴타이를 통해 제4대 대칸으로 즉위했다. 이는 기존 오고타이 가문과 차가타이 가문이 쥐고 있던 몽골 제국의 대권이 툴루이 가문으로 완전히 넘어갔음을 의미했다. 몽케 칸은 즉위 직후 반대파의 음모를 적발하고 대대적인 숙청을 단행하여 자신의 권력을 확고히 다졌다. 이후 그는 동생인 훌라구와 쿠빌라이에게 각각 서아시아와 동아시아의 정복 작전을 총괄하게 함으로써 몽골 제국이 유라시아 전역으로 더욱 강하게 뻗어나가는 계기를 마련했다.

유럽에서는 프랑스를 중심으로 이른바 목자들의 십자군이라 불리는 대규모 민중 봉기가 발생했다. 제7차 십자군 원정에 나섰던 프랑스 국왕 루이 9세가 이집트에서 이슬람 세력에게 포로로 잡혔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농민과 양치기 등 하층민들이 국왕을 구출하겠다며 자발적으로 일어난 사건이다. 이들은 초기에는 순수한 신앙적 열정으로 모여 파리로 진진했으나, 점차 통제력을 잃고 유대인을 학살하거나 성직자들을 공격하는 폭도로 돌변하여 결국 프랑스 섭정부와 군대에 의해 유혈 진압되었다. 한편 영국 스코틀랜드에서는 10세의 어린 국왕 알렉산더 3세가 잉글랜드 국왕 헨리 3세의 딸 마거릿 공주와 요크에서 결혼식을 올리며 양국 간의 복잡한 정치적 외교 관계를 이어갔다.

결과적으로 1251년은 몽골 제국의 팽창과 그에 따른 세계사적 지각 변동 속에서 각 국가와 지역이 어떻게 대응하고 변화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시기다. 고려는 대장경 완성이라는 전무후무한 문화적 성취를 통해 국가적 위기를 극복할 이념적 토대를 마련했고, 몽골은 몽케 칸의 즉위로 제국 내분을 수습하고 세계 정복의 고삐를 다시 당겼다. 유럽 역시 십자군 전쟁의 실패가 불러온 하층민의 극심한 동요를 겪으며 중세 사회의 내부적 모순과 구조적 한계를 드러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