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5년은 율리우스력의 일요일로 시작하는 평년이며, 13세기의 중반에 해당하는 해이다. 세계사적으로 이 시기는 몽골 제국의 팽창이 유라시아 대륙 전역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던 때였으며, 유럽에서는 교황권과 세속 군주 간의 권력 투쟁이 절정에 달했다. 동아시아 역시 몽골의 침략과 이에 대한 각국의 항쟁 및 정치적 변동이 주요한 시대적 배경을 이루고 있었다.
한국의 역사에서 1245년은 고려 시대 고종 32년에 해당한다. 당시 고려는 최우가 이끄는 무신정권의 통치하에 있었으며, 몽골의 침략을 피해 도읍을 강화도로 옮겨 장기 항전을 이어가던 시기였다. 국난을 극복하기 위한 국가적 차원의 불교 사업인 팔만대장경(재조대장경) 판각 작업이 이 해에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었다. 한편 몽골 제국은 2대 대칸인 오고타이가 사망한 후 그의 황후인 퇴레게네가 섭정을 맡고 있었으며, 최고 권력자의 공백기임에도 불구하고 주변국에 대한 군사적, 외교적 압박을 지속하고 있었다.
유럽에서는 중세 정치사에 큰 획을 긋는 종교적, 정치적 격변이 일어났다. 교황 인노첸시오 4세는 프랑스 리옹에서 제1차 리옹 공의회를 소집했다. 이 공의회의 가장 핵심적인 안건은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프리드리히 2세와의 갈등 문제였다. 교황은 황제가 교회의 권위에 도전하고 이탈리아 반도에서 교황령을 위협한다는 이유로 프리드리히 2세를 파문하고, 그의 황제위와 시칠리아 왕위를 폐위한다고 선언했다. 이는 중세 유럽에서 교황권이 세속 군주권에 우위를 점하고자 했던 대표적인 사건으로 평가받는다.
또한 1245년은 동양과 서양의 교류사에 있어 중요한 외교적 접촉이 시작된 해이기도 하다. 동유럽을 휩쓴 몽골 제국의 군사력에 경악한 교황 인노첸시오 4세는 몽골의 추가적인 서진을 막고 그들을 기독교로 개종시키기 위해 프란치스코회 수사였던 조반니 다 피안 델 카르피네(Giovanni da Pian del Carpine)를 교황의 사절로 파견했다. 카르피네 일행은 1245년 4월 리옹을 출발하여 몽골 제국의 수도 카라코룸을 향한 길고 험난한 여정에 올랐으며, 이는 유럽인이 아시아 내륙을 깊숙이 탐험하고 상세한 기록을 남긴 선구적인 사례가 되었다.
문화 및 건축 분야에서도 후대에 남을 중요한 변화가 시작되었다. 잉글랜드의 국왕 헨리 3세는 1245년에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사원을 대대적으로 재건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그는 에드워드 참회왕을 기리고 자신의 왕권을 과시하기 위해 기존의 낡은 로마네스크 양식 건물을 철거하고 당대 유행하던 화려한 프랑스풍 고딕 양식으로 사원을 다시 짓도록 명했다. 이 재건 작업은 이후 수십 년에 걸쳐 진행되었으며, 오늘날 영국 왕실의 주요 행사가 열리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웅장한 뼈대를 형성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