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1년은 고려 의종 15년이자 동아시아와 세계사에 있어 중대한 전환점이 된 해였다. 고려에서는 문신 중심의 귀족 문화가 절정에 달했던 시기로, 의종은 여러 곳에 정자와 별궁을 짓고 문신들과 시회를 열며 유희적인 생활을 이어갔다. 그러나 이러한 화려한 문화의 이면에는 무신들에 대한 차별과 소외가 깊어지고 있었으며, 이는 훗날 무신정변이라는 권력 구조의 대격변을 야기하는 잠재적 원인이 되었다.
중국 대륙에서는 금나라와 남송 사이의 대규모 전쟁이 발생했다. 금나라의 제4대 황제인 해릉왕 완안량은 중국 전역을 통일하려는 야욕을 품고 약 60만 명에 달하는 대군을 동원하여 남송을 침공했다. 해릉왕은 금나라 내부에 반대 여론이 상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원정을 강행했으며, 이 과정에서 과도한 징병과 세금 부과로 인해 금나라 민중과 귀족층의 불만을 샀다.
1161년 음력 11월, 양쯔강의 요충지인 채석기에서 동아시아 전쟁사의 중요한 전투 중 하나인 채석강 전투가 벌어졌다. 남송의 문관 우윤문은 패배의 위기에 처한 군사들을 독려하여 금나라의 수군에 맞섰다. 남송군은 화약을 이용한 신무기인 '화포'와 빠른 기동력을 가진 함선을 활용하여 금나라 대군을 격파했다. 이 승리는 남송의 멸망을 막아냈을 뿐만 아니라 금나라의 남진 의지를 꺾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채석강 전투의 패배 소식이 전해지자 금나라 내부에서는 해릉왕의 폭정에 반대하는 세력이 결집했다. 해릉왕이 전선에 나가 있는 동안 후방의 요양에서는 완안옹(금 세종)이 황제로 추대되었다. 결국 전선에서 고립된 해릉왕은 자신의 부하 장수들에게 피살당하며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다. 해릉왕의 죽음으로 금나라 군대는 철수했고, 금나라는 이후 세종의 치세 아래 내실을 다지는 안정기로 접어들게 되었다.
서구권에서는 신성 로마 제국의 프리드리히 1세가 이탈리아 도시 국가들을 정복하기 위해 제4차 이탈리아 원정을 준비하며 황제권을 강화하고 있었다. 한편 비잔티움 제국의 마누엘 1세는 십자군 국가들과의 외교적 우위를 점하며 제국의 위상을 높이려 애썼다. 이처럼 1161년은 동양에서는 대규모 전쟁과 정권 교체가, 서양에서는 제국 간의 권력 재편이 활발하게 일어난 격동의 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