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4년

1134년은 고려 인종 12년에 해당하는 해로, 고려 내부에서는 서경 천도 운동을 둘러싼 갈등이 극에 달하던 시기였다. 승려 묘청과 정지상 등 서경파 세력은 풍수지리설을 근거로 서경(평양)으로 수도를 옮길 것을 강력히 주장하며 대원궁 건축을 마무리하였다. 인종은 서경파의 설득에 따라 서경으로 행차하였으나, 개경 문벌 귀족들의 격렬한 반대와 서경 대원궁에 벼락이 치는 등 불길한 징조가 겹치면서 천도 계획은 차질을 빚게 되었다. 이러한 정치적 긴장 상태는 이듬해인 1135년 묘청의 난이 발발하는 결정적인 배경이 되었다.

중국 대륙에서는 남송과 금나라 및 그 괴뢰 정권인 유제(劉齊) 사이의 전쟁이 지속되었다. 남송의 명장 악비는 이 해에 대규모 반격 작전을 전개하여 금나라에 점령당했던 양양 등 6개 군현을 탈환하는 전공을 세웠다. 이는 정강의 변 이후 방어에 급급했던 남송이 군사적 역량을 발휘하여 잃어버린 영토를 회복하기 시작한 중요한 분기점이 되었으며, 악비의 명성이 중원에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유럽에서는 덴마크 왕국 내의 내전이 격화되어 포테비크 전투(Battle of Fotevik)가 발생했다. 이 전투에서 에리크 2세(에리크 에무네)가 숙부인 닐스 왕과 그의 아들 망누스 닐센의 군대를 격파하고 승리하였다. 이 승리로 인해 에리크 2세는 덴마크의 단독 통치자로 등극하였고, 패배한 망누스 닐센은 전사하였으며 닐스 왕은 얼마 후 살해당했다. 이 사건은 덴마크 왕실의 권력 구조를 재편하는 중대한 사건으로 기록된다.

이베리아 반도에서는 아라곤 왕국의 국왕 알폰소 1세가 이슬람 세력인 알모라비드 왕조와의 프라가 전투에서 입은 상처가 악화되어 사망했다. 평생 자식이 없었던 알폰소 1세는 자신의 왕국을 기사단에 기부한다는 이례적인 유언을 남겼으나, 이는 지켜지지 않았고 동생인 라미로 2세가 왕위를 계승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나바라 왕국이 아라곤으로부터 다시 분리 독립하는 등 이베리아 반도의 기독교 국가들 사이에 영토와 주권을 둘러싼 변화가 일어났다.

프랑스에서는 샤르트르 대성당의 서쪽 부분이 대화재로 소실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화재 이후 대성당의 재건 작업이 시작되었으며, 이는 훗날 고딕 건축 양식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현재의 건축물로 이어지는 초기 단계가 되었다. 한편, 가톨릭 교회 내부에서는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두스가 이끄는 시토회가 세력을 확장하며 수도원 개혁 운동과 더불어 유럽 전역의 정치 및 종교계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