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6

1096년은 서유럽 중세사에서 결정적인 전환점이 된 해로, 제1차 십자군 원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기이다. 전년도인 1095년 클레르몽 공의회에서 교황 우르바누스 2세가 성지 탈환을 호소한 이후, 유럽 전역에서는 성지로 향하려는 열기가 고조되었다. 이 해에 시작된 군사적 움직임은 향후 수세기 동안 이어질 기독교 세계와 이슬람 세계 간의 장기적인 갈등과 교류의 서막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가장 먼저 움직인 세력은 정규군이 아닌 민중 십자군이었다. 은자 피에르와 무일푼의 발터가 이끄는 농민, 하급 기사, 부녀자 등 수만 명의 군중은 신앙심에 고취되어 동방으로 향했다. 이들은 제대로 된 보급이나 훈련 없이 행군을 강행했으며, 이동 경로에 있는 헝가리와 비잔티움 제국의 영토에서 식량을 약탈하거나 현지 주민들과 충돌을 빚기도 했다. 결국 1096년 10월, 소아시아의 키보토스 전투에서 룸 셀주크 왕조의 복병을 만나 궤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으며 실패로 끝났다.

민중 십자군과는 별개로, 서유럽의 유력 봉건 제후들이 이끄는 주력군인 제후 십자군도 1096년에 출발을 시작했다. 부용의 고드프루아, 타란토의 보에몽, 툴루즈의 레이몽 4세 등은 각자의 영지에서 군대를 조직하여 서로 다른 경로를 통해 콘스탄티노플로 집결했다. 이들은 비잔티움 황제 알렉시오스 1세로부터 탈환한 영토를 반환하겠다는 서약을 강요받는 등 정치적 긴장 관계 속에서도 협상을 진행하며 원정의 기틀을 마련했다.

십자군 운동의 광풍은 유럽 내부의 비극으로도 이어졌다. 원정의 열기가 반유대주의와 결합하면서, 라인강 유역의 도시들인 슈파이어, 보름스, 마인츠 등에서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학살이 자행되었다. 에미코 백작 등이 주도한 이 폭력 사태는 성지로 떠나기 전 내부의 적을 처단한다는 왜곡된 명분 아래 이루어졌으며, 이는 중세 유럽사에서 유대인 박해의 잔혹한 사례 중 하나로 기록되었다.

동아시아의 상황을 살펴보면, 고려에서는 숙종 재위 2년째를 맞이하고 있었다. 숙종은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다양한 개혁 정책을 추진하고 있었으며, 남경(현재의 서울) 건설을 본격화하고 주전관을 설치하여 화폐 유통을 시도하는 등 국가 체제 정비에 힘쓰고 있었다. 중국의 송나라는 철종의 치세 하에 있었으나 내부적으로는 신법당과 구법당의 당쟁이 지속되고 있었으며, 북방의 요나라와 긴장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