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7년

1047년은 고려 제11대 국왕 문종의 재위 2년 차에 해당하는 해이다. 문종은 이 시기부터 본격적인 문치주의 정치를 펼치며 고려의 전성기를 이끌 준비를 갖추었다. 특히 그는 법제 정비에 큰 관심을 기울였으며, 관리들의 기강을 확립하고 율령을 개정하는 등 내치에 힘을 쏟았다. 이는 훗날 고려의 통치 체제가 완성되는 중요한 기틀이 되었다.

서유럽에서는 노르망디 공국의 기욤 2세가 발레뒨 전투에서 승리하며 권력을 공고히 했다. 당시 반란을 일으킨 노르망디 귀족들에 맞서 프랑스 국왕 앙리 1세의 지원을 받은 기욤 2세는 이 전투에서의 결정적인 승리를 통해 공국 내의 지배권을 완전히 장악했다. 이 사건은 훗날 그가 '정복왕 윌리엄'으로서 잉글랜드를 정복하고 노르만 왕조를 세우는 정치적 자산이 되었다.

비잔티움 제국에서는 레오 토르니키오스의 반란이 발생하여 제국이 혼란에 빠졌다. 토르니키오스는 황제 콘스탄티누스 9세 모노마코스에 대항해 군대를 이끌고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포위하는 등 강력한 위세를 떨쳤다. 그러나 공성전에서 성벽을 뚫지 못하고 군사적 실패를 거듭한 끝에 반란군은 와해되었으며, 토르니키오스는 붙잡혀 처형되었다. 이 사건은 비잔티움 제국 내부의 군사 귀족과 중앙 정부 사이의 갈등을 노출시켰다.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는 교황 클레멘스 2세가 1047년 10월에 사망하면서 교황좌의 공백과 혼란이 뒤따랐다. 클레멘스 2세는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하인리히 3세의 지원을 받아 선출되었으나 재임 기간이 1년이 채 되지 않았다. 그의 사후 실각했던 전임 교황 베네딕토 9세가 다시 교황직을 찬탈하려 시도하는 등 로마 내에서 세력 다툼이 벌어졌다. 이러한 혼란은 당시 교회가 세속 권력의 영향력 아래 놓여 있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동아시아의 송나라에서는 인종의 치세 아래 문물과 제도가 정비되고 유교적 관료 정치가 자리를 잡아갔다. 송나라는 북방의 요나라 및 서하와 대치하면서도 내부적으로는 경제와 문화를 발전시켰으며, 고려와의 사신 왕래를 통해 활발한 외교 관계를 유지했다. 이 시기 형성된 동아시아의 국제 질서는 각국의 독자적인 문화적 개화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