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5년은 11세기 중반에 해당하는 평년으로, 기독교 기원 이후 1045번째 해이며 2천년대의 45번째 해이다. 이 시기는 중세 성기(High Middle Ages)의 정점에 접어드는 단계로, 동양과 서양 모두에서 각 국가의 내부 정비와 영토 확장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특히 유라시아 대륙 곳곳에서 정치적 격변과 종교적 갈등, 그리고 문화적 변천이 동시에 나타난 시기이기도 하다.
동아시아의 고려 왕조에서는 제10대 국왕 정종(靖宗)의 재위 12년째가 되는 해였다. 당시 고려는 북방의 거란(요나라)과 여진족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천리장성을 축조하는 등 국방력 강화에 힘쓰고 있었다. 정종은 내치와 민생 안정에도 노력을 기울였으나, 이듬해인 1046년에 서거하게 된다. 같은 시기 중국의 북송(北宋) 왕조에서는 인종(仁宗)의 치세 하에 범중엄 등이 주도한 경력신정(慶曆新政)이라는 개혁 정치가 펼쳐지고 있었으나, 보수파의 반발로 인해 점차 동력을 잃어가던 시기였다.
비잔티움 제국은 콘스탄티누스 9세 모노마코스의 치세 아래 영토 확장의 성과를 거두었다. 1045년 비잔티움 제국은 아르메니아의 바그라투니 왕조를 멸망시키고 그 수도인 아니(Ani)를 병합하였다. 이는 제국의 동부 국경을 강화하는 성과였으나, 한편으로는 완충 지대 역할을 하던 아르메니아 왕국이 사라짐으로써 이후 셀주크 튀르크의 침공에 직접적으로 노출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 이 사건은 향후 중동과 비잔티움 간의 세력 균형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다.
서유럽의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는 교황권의 혼란이 극에 달한 해였다. 교황 베네딕토 9세가 교황직을 자신의 대부인 조반니 그라치아노(그레고리오 6세)에게 돈을 받고 매도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로 인해 한 해 동안 세 명의 교황이 서로 정통성을 주장하는 전례 없는 사태가 벌어졌으며, 이는 교회 내부의 성직 매매 문제와 부패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이러한 혼란은 훗날 교회 개혁 운동과 서임권 투쟁의 간접적인 배경이 되었다.
영국에서는 에드워드 참회왕이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건설을 지속하며 왕권을 공고히 하고 있었다. 한편, 문화적으로는 송나라의 필승(畢昇)이 발명한 도활자 인쇄술이 이 시기를 전후하여 발전하고 있었으며, 이는 지식의 기록과 전파 방식에 혁신적인 기틀을 마련하였다. 1045년은 이처럼 세계 각지에서 중세 사회의 기틀이 다져지고 다음 시대를 향한 변화의 씨앗이 뿌려진 해로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