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이프르 전투는 제1차 세계 대전 초기인 1914년 10월 19일부터 11월 22일까지 벨기에 플랑드르 지방의 요충지인 이프르(Ypres)를 두고 벌어진 연합군과 독일군 사이의 격전이다. 이 전투는 이른바 '바다를 향한 경주(Race to the Sea)'의 정점이자 결말이었으며, 기동전이 종료되고 악명 높은 참호전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개막했음을 알리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영국군, 프랑스군, 벨기에군으로 구성된 연합군은 독일군의 거센 공세를 막아내며 북해 연안의 항구들을 사수하는 데 성공했다.
독일군은 파리 함락을 목표로 했던 슐리펜 계획이 마른 전투에서 좌절되자, 서부 전선의 측면을 돌아 연합군의 보급로를 차단하고 영국 채널의 항구들을 점령하기 위해 북쪽으로 병력을 이동시켰다. 에리히 폰 팔켄하인 장군이 이끄는 독일군은 수적으로 우세한 병력을 동원해 이프르를 점령하고자 맹렬한 공세를 펼쳤다. 특히 독일 제4군과 제6군은 연합군의 방어선을 돌파하기 위해 파상공세를 이어갔으나, 지형적 이점과 연합군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혀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전투 과정에서 독일군은 보충병으로 투입된 수많은 젊은 학도병들이 전사하는 비극을 겪었는데, 이는 독일 역사에서 '랑게마르크의 영아 학살(Kindermord)'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었다. 숙련되지 않은 대학생과 지원병들이 애국심을 바탕으로 돌격했으나 영국군의 정교한 소총 사격 앞에 무력하게 쓰러져 나간 사건은 전쟁의 참혹함을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한편 벨기에군은 이세르강의 수문을 개방하여 저지대를 침수시키는 수공(水攻) 작전을 펼침으로써 독일군의 진격을 저지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이 전투의 결과로 이프르 일대에는 이른바 '이프르 돌출부(Ypres Salient)'가 형성되었다. 영국 원정군(BEF)은 이 전투에서 숙련된 직업 군인들의 상당수를 잃는 괴멸적인 타격을 입었으나, 독일군 역시 13만 명 이상의 사상자를 내며 공세 능력을 상실했다. 양측 모두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지 못한 채 전선이 고착화되었고, 병사들은 땅을 파고 들어가 참호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이는 이후 수년간 지속될 소모전과 교착 상태의 시작이었으며, 이프르는 제1차 세계 대전 중 가장 치열하고 희생이 컸던 전장 중 하나로 남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