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지와라노 칸시(藤原寛子, 1036~1127)는 일본 헤이안 시대 후기의 인물이자 제70대 고레제이 천황의 중궁이다. 강력한 섭정이었던 관백 후지와라노 요리미치의 장녀로 태어났으며, 어머니는 후지와라노 기시이다. 할아버지는 후지와라 씨족의 전성기를 이끈 후지와라노 미치나가로, 그녀는 가문의 권위와 위세를 배경으로 삼아 황실의 핵심 인물로 성장했다.
1050년 15세의 나이로 고레제이 천황의 후궁으로 들어와 여어(女御)가 되었으며, 이듬해 중궁으로 책봉되었다. 당시 고레제이 천황에게는 이미 고이치조 천황의 딸인 장자 내친왕이 황후로 있었으나, 아버지 요리미치는 자신의 딸을 중궁으로 세워 한 천황 아래 두 명의 황후를 두는 '일제이후(一帝二后)'의 형태를 유지했다. 이는 후지와라 셋칸 가문이 천황가 내에서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던 정치적 실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칸시는 천황의 총애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평생 자녀를 낳지 못했다. 이는 외척 관계를 통해 권력을 독점하던 후지와라 가문에 있어서 중대한 정치적 변수였다. 결국 고레제이 천황 사후, 후지와라 씨족과 직접적인 혈연관계가 없는 고산조 천황이 즉위하게 되었다. 이 사건은 강력했던 셋칸 정치가 쇠퇴하고, 천황이 퇴위 후에도 실권을 쥐는 원정(院政) 시대로 이행하는 역사적 전환점이 되었다.
1068년 고레제이 천황이 붕어한 후 칸시는 황태후를 거쳐 태황태후에 올랐다. 그녀는 92세라는 당시로서는 매우 이례적인 장수를 누렸으며, 고산조, 시라카와, 호리카와, 도바, 스토쿠 천황에 이르기까지 여러 대에 걸친 황실의 어른으로 대접받았다. 만년에는 불교에 귀의하여 출가하였으며, 우지의 가야노인(高陽院)에서 거처하였기에 '가야노인 중궁'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문화적으로 칸시는 뛰어난 문학적 소양과 예술적 감각을 지닌 인물이었다. 그녀의 살롱은 당대 문인들이 모이는 문화적 중심지였으며, 본인 역시 와카(和歌)에 능하여 여러 칙찬 와카집에 그녀의 작품이 수록되었다. 특히 '가야노인 노래 맞추기'와 같은 행사를 주최하며 헤이안 귀족 문화의 발전과 전승에 기여했다. 그녀의 긴 생애는 셋칸 정치의 황금기부터 그 몰락과 새로운 정치 체제의 등장을 아우르는 헤이안 시대의 격변기를 관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