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군판(洪君判, ?~?)은 고려 후기의 문신이자 무신으로, 본관은 남양(南陽)이다. 고려 공민왕 재위기에 활동하며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국가를 방어하고 수도를 수복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다. 그의 가문인 남양 홍씨는 당대 고려의 유력한 권문세족 중 하나로, 그는 가문의 배경과 본인의 능력을 바탕으로 조정의 주요 관직을 역임하며 국정에 참여했다.
홍군판의 가장 두드러진 업적은 1361년(공민왕 10) 홍건적이 대규모로 침입했을 당시에 나타났다. 홍건적의 침공으로 수도 개경이 함락되고 공민왕이 복주(지금의 안동)까지 피란하는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그는 안우, 이방실, 김득배 등과 함께 고려군을 지휘하여 적을 격퇴하는 데 앞장섰다. 1362년 정월, 고려군이 개경을 포위하고 총공격을 가해 홍건적을 몰아낼 때 그는 전공을 세워 수도 수복의 주역 중 한 명이 되었다.
개경 수복 이후 홍군판은 그 공로를 인정받아 수복경성공신(收復京城功臣) 1등에 책봉되었다. 당시 그의 관직은 밀직부사(密直副使)에 이르렀으며, 이는 국가의 군사 기밀과 정무를 다루는 요직이었다. 그는 혼란스러운 고려 말기의 정국 속에서도 군사적 역량을 발휘하며 왕실을 보좌했고, 급박한 전란 속에서 군대를 정비하고 민심을 수습하는 데 기여했다.
그의 가계와 관련하여 홍군판은 홍선개(洪先慨)의 아들이며, 그의 자손들은 조선 초기까지 가문의 위상을 이어갔다. 홍군판의 생애와 활동은 『고려사(高麗史)』와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등의 역사서에 기록되어 있으며, 특히 홍건적의 난을 진압한 공신 명단에서 그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그가 당시 고려가 처한 외세의 위협을 극복하는 데 있어 중추적인 인물이었음을 입증한다.
홍군판은 권문세족의 일원이면서도 전장에서 직접 군사를 지휘하며 공을 세운 인물로 평가받는다. 고려 후기 원나라의 간섭과 홍건적 및 왜구의 끊임없는 침입으로 국운이 위태로웠던 시기에, 그는 무훈을 통해 국가의 자주성을 지키고자 노력했다. 그의 업적은 고려 말 군사 제도와 공신 체제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학술적 가치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