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1년

361년은 율리우스력으로 금요일로 시작하는 평년이다. 서양사에서는 로마 제국의 종교 정책에 거대한 변화를 예고한 율리아누스 황제의 단독 즉위가 있었던 해이며, 동양사에서는 중국 동진의 황제 교체와 한반도 삼국시대의 각국 체제 정비가 이루어지던 시기이다. 4세기의 중반을 지나는 이 시점은 유라시아 대륙의 동서 양쪽에서 정치적 격변이 발생했던 중요한 분기점으로 기록된다.

로마 제국에서는 콘스탄티우스 2세가 사망하고, 부제였던 율리아누스가 로마의 유일한 황제(아우구스투스)로 등극했다. 이해 11월 3일 콘스탄티우스 2세가 병으로 사망하기 전 율리아누스를 후계자로 인정함으로써, 우려되었던 내전은 피할 수 있었다. 12월 11일 콘스탄티노플에 입성한 율리아누스는 훗날 기독교인들에 의해 '배교자 율리아누스'라고 불리게 되는데, 이는 그가 제국 내에서 기독교의 특권을 박탈하고 전통 로마 다신교와 헬레니즘 문화를 부흥시키려는 정책을 본격화했기 때문이다. 그의 즉위는 콘스탄티누스 1세 이후 기독교화되어 가던 로마 제국의 흐름을 일시적으로 역행시키려 했던 시도로 역사적 의의를 갖는다.

중국 역사에서는 동진(東晉)의 제5대 황제인 목제 사마담이 사망하고, 그의 사촌인 사마비가 제6대 황제 애제(哀帝)로 즉위한 해이다. 목제는 젊은 나이에 후사 없이 세상을 떠났으며, 애제의 즉위와 함께 연호는 승평(昇平)에서 융화(隆和)로 바뀌기 전 과도기를 거쳤다. 당시 중국 북부는 오호십육국 시대로 혼란스러웠으나, 모용씨가 세운 전연(前燕)이 중원 지역에서 강력한 세력을 떨치고 있었다. 전연의 군주 모용준은 동진과의 대립 속에서 화북 지역의 패권을 공고히 하고 있었다.

한반도는 고구려, 백제, 신라가 정립하던 삼국시대였다. 361년은 고구려 고국원왕 31년, 백제 근초고왕 16년, 신라 내물 마립간 6년에 해당한다. 당시 고구려는 서북쪽의 전연과 지속적인 군사적 긴장 관계에 있었으며, 백제는 근초고왕의 통치 아래 내부 결속을 다지고 점차 영토 확장을 준비하던 전성기의 초입에 있었다. 신라는 내물왕 재위 초기로, 박·석·김 3성의 교대 왕위 계승이 끝나고 김씨에 의한 왕위 독점 세습권이 확립되어 가던 시기였다.

종교 및 문화사적으로는 기독교 신학에서 중요한 인물인 나지안조스의 그레고리우스가 사제로 서품된 해이기도 하다. 그는 훗날 콘스탄티노플의 대주교가 되어 삼위일체 신학을 정립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로마 제국 내에서는 율리아누스 황제의 즉위와 함께 이교 사원들이 다시 문을 열고 제사가 허용되는 등 종교적 분위기가 급변했으나, 이러한 복고 정책은 율리아누스의 짧은 재위 기간으로 인해 오래 지속되지는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