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쯔전(賀子珍, 1909~1984)은 중국 공산당의 초기 혁명가이자 마오쩌둥의 두 번째 부인이다. 본명은 허구이위안(賀桂圓)이며 장시성 융신현의 지주 가문에서 태어났다. 1926년 중국 공산당에 입당하여 일찍이 혁명 운동에 투신하였고, 1927년 마오쩌둥이 이끄는 추수 봉기군이 징강산에 들어왔을 때 그와 처음 만났다. 뛰어난 사격 실력과 미모를 겸비하여 '징강산의 일화(一花)'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1928년 허쯔전은 마오쩌둥과 결혼하여 이후 10년 동안 그의 비서이자 정치적 동반자로 활동했다. 특히 1934년부터 시작된 대장정 기간 동안 허쯔전은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부대와 함께 이동했다. 행군 도중 국민당군의 폭격으로 인해 온몸에 파편이 박히는 중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혁명에 대한 의지를 굽히지 않고 끝까지 행군을 마친 강인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옌안 시절에 접어들며 마오쩌둥과의 관계는 악화되었다. 잦은 출산과 전쟁으로 인한 부상, 그리고 정치적 갈등이 겹치면서 허쯔전의 심신은 극도로 쇠약해졌다. 1937년 그는 몸 안의 파편을 제거하고 치료를 받기 위해 소련으로 떠났으나, 그가 소련에 머무는 사이 마오쩌둥은 배우 출신의 장칭과 재혼했다. 이 소식을 접한 허쯔전은 소련에서 정신적 고통과 생활고를 겪으며 고립된 생활을 이어가야 했다.
1947년 중국으로 귀국한 이후에도 허쯔전의 삶은 평탄하지 않았다. 당의 결정에 따라 마오쩌둥이 있는 베이징에 거주하는 것이 금지되었고, 하얼빈과 상하이 등지를 전전하며 소외된 삶을 살았다. 문화대혁명 시기에는 장칭의 견제로 인해 정치적 박해를 받기도 했으나, 마오쩌둥 사후인 1979년에 이르러서야 인민정치협상회의 전국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며 명예를 일부 회복했다.
허쯔전은 중국 현대사의 격동기 속에서 여성 혁명가로서 헌신했으나 개인적으로는 비극적인 생애를 보낸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는 마오쩌둥과의 사이에서 여러 자녀를 두었으나 대장정 중 잃어버리거나 요절하여 딸 리민만이 유일하게 장성했다. 1984년 상하이에서 지병으로 사망했으며, 그의 유해는 중국 혁명가들의 안식처인 베이징 바바오산 혁명열사릉에 안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