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세만

함세만(咸世漫, 1923년 7월 17일 ~ 2003년 1월 3일)은 대한민국의 법조인이자 정치인이다. 본관은 강릉이며, 경상북도 경주에서 태어났다. 그는 일제강점기 말기에 수학하고 해방 이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초기 법조계와 정계에서 활동하며 국가 기틀을 잡는 데 기여한 인물이다.

그는 경성법학전문학교를 졸업한 후 법조계에 투신하였다. 1948년 제2회 조선변호사시험에 합격하였으며, 이후 대구지방법원 판사로 재직하며 법률 전문가로서의 경력을 쌓았다. 판사 재직 시절에는 엄정한 법 집행과 판결로 주목받았으며, 공직을 떠난 후에는 변호사로 활동하며 인권 보호와 법률 제도 개선에 힘을 보탰다.

정치인으로서 함세만은 제4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1958년 실시된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경상북도 경주군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국회 입성 후에는 법제사법위원회 등에서 활동하며 입법 활동에 전념하였고, 당시 자유당 정권의 독재에 맞서 야당 정치인으로서 민주주의 가치를 수호하는 데 앞장섰다.

1960년 4·19 혁명 이후 정치적 격변기를 거치며 그는 다시 법조계로 돌아가 원로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대한변호사협회 부회장을 역임하는 등 법조인의 권익 신장과 사법 발전을 위해 노력하였다. 그는 정치적 부침 속에서도 법조인으로서의 양심을 지키려 노력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함세만은 2003년 1월 3일, 향년 80세를 일기로 별세하였다. 그의 생애는 대한민국 현대사의 격동기 속에서 법치주의와 민주주의를 확립하려 했던 한 지식인의 궤적을 보여준다. 경주 지역사회와 법조계에서는 그를 청렴하고 소신 있는 인물로 기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