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인리히 크라이페

하인리히 크라이페(Heinrich Kreipe, 1895년 6월 5일 ~ 1976년 6월 14일)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활약한 독일 국방군의 장성이다.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군에 입대하여 철십자 훈장을 수여받았으며, 전간기에도 군 경력을 지속하며 지휘관으로서의 역량을 쌓았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동부 전선 등 여러 전역에서 복무하였고, 1944년에는 그리스 크레타섬에 주둔하던 제22공정사단의 사단장으로 부임하였다. 그는 크레타섬 내 독일 점령군의 핵심 지휘관 중 한 명으로 활동했다.

크라이페가 역사적으로 널리 알려진 계기는 1944년 4월 26일에 발생한 대담한 납치 사건이다. 당시 영국 특별작전집행부(SOE) 소속의 패트릭 리 퍼머 소령과 윌리엄 스탠리 모스 대위는 크레타 저항군과 협력하여 크라이페를 납치하려는 기습 작전을 설계하였다. 이들은 독일군 검문소에서 독일군 헌병으로 변장한 채 크라이페가 퇴근하던 차량을 습격하여 그를 생포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는 제2차 세계 대전 중 점령지의 고위 장성을 납치한 매우 이례적이고 대담한 특수 작전 사례로 꼽힌다.

납치된 크라이페는 독일군의 대대적인 추격을 피해 크레타섬의 험준한 이다 산을 넘는 등 고된 여정을 겪어야 했다. 납치조와 크라이페는 약 3주간의 도피 행군 끝에 섬 남해안에 도달하였으며, 그곳에서 대기 중이던 영국의 주정을 타고 이집트로 압송되었다. 이 과정에서 퍼머 소령과 크라이페가 호라티우스의 시를 함께 읊으며 서로의 학식과 교양을 확인했다는 일화는 전쟁사에서 매우 유명한 일화로 남았다. 이후 그는 카이로와 런던을 거쳐 캐나다의 포로 수용소로 이송되어 수감 생활을 하였다.

전쟁이 끝난 후인 1947년에 석방된 크라이페는 독일로 돌아가 여생을 보냈다. 1972년에는 그리스의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자신을 납치했던 패트릭 리 퍼머와 다시 만나 화해의 시간을 갖기도 하였다. 크라이페 납치 사건은 전략적으로 독일군의 지휘 체계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지는 않았으나, 연합군과 현지 저항군의 사기를 크게 진작시켰으며 독일군에게는 심리적 위축을 가져다주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 사건은 훗날 '밤에 만난 일루전(Ill Met by Moonlight)'이라는 제목의 책과 영화로 제작되어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