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드리아노 3세(Hadrianus III)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제109대 교황으로, 884년 5월 17일부터 885년 9월까지 약 1년 4개월 동안 재임하였다. 로마 출신으로 베네딕토의 아들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교황 선출 이전의 구체적인 생애에 대해서는 기록이 미비하다. 그는 전임 교황 마리노 1세의 뒤를 이어 즉위하였으며, 당시 카롤링거 왕조의 쇠퇴와 이탈리아 내부의 정치적 혼란이 가중되던 시기에 교황청을 이끌었다.
그의 재임 기간 중 가장 중요한 정치적 사건은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인 '뚱보왕' 카를 3세와의 관계였다. 카를 3세는 적법한 후계자가 없었기에 자신의 서자인 베르나르두스를 후계자로 승인받고자 했으며, 이를 위해 교황의 권위와 지지가 절실했다. 하드리아노 3세는 황제의 요청에 응하여 제국의 후계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독일 보름스에서 열리는 제국 의회에 참석하기로 결정하고 로마를 떠나 북쪽으로 향했다.
대외 정책 측면에서 하드리아노 3세는 동방 교회와의 관계 개선에 주력하였다. 그는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 포티오스에게 우호적인 서신을 보내는 등, 전임자들 시기에 악화되었던 비잔티움 제국 및 동방 교회와의 갈등을 완화하려 노력했다. 또한 로마 내부적으로는 전임 교황들의 강압적인 통치로 인해 처벌받거나 추방되었던 인사들을 복권시키고 사면함으로써 로마 귀족 세력과의 화합을 도모하며 정국을 안정시키고자 했다.
하드리아노 3세는 카를 3세를 만나기 위해 여행하던 중인 885년 9월, 모데나 인근의 산 체사리오 술 파나로에서 갑작스럽게 사망하였다.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두고 당시 정적들에 의한 독살설이 제기되기도 했으나 공식적으로 확인된 바는 없다. 그의 유해는 인근의 노난톨라 수도원에 안치되었으며, 이 수도원은 이후 하드리아노 3세를 기리는 신앙의 중심지가 되었다.
사후 하드리아노 3세는 로마 시민들과 노난톨라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 성인으로 추대되어 공경받았다. 그의 성인 공경은 수 세기 동안 지역적으로 이어져 오다가, 1891년 교황 레오 13세에 의해 정식으로 승인되었다. 그의 축일은 7월 8일이며, 짧은 재임 기간에도 불구하고 중세 초기의 혼란스러운 정세 속에서 교회의 독립성과 평화를 유지하려 했던 인물로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