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드리아노 1세(Hadrianus I)는 772년부터 795년까지 재위한 제95대 교황이다. 로마의 귀족 가문 출신으로, 전임 교황 스테파노 3세의 뒤를 이어 교황좌에 올랐다. 그는 교황 역사상 손꼽히는 장기 재위자 중 한 명이며, 프랑크 왕국의 카를 대제(샤를마뉴)와 긴밀한 협력 관계를 유지하며 교황령의 기틀을 확고히 다진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의 재위 초기는 랑고바르드 왕국의 위협으로 점철되었다. 랑고바르드의 왕 데시데리우스가 교황령을 압박하자, 하드리아노 1세는 카를 대제에게 원군을 요청했다. 이에 카를 대제는 773년 이탈리아를 침공하여 랑고바르드 왕국을 멸망시키고 스스로 랑고바르드의 왕을 겸했다. 이 과정에서 카를 대제는 부친 피핀이 약속했던 영토 기증(피핀의 기증)을 재확인하고 확장함으로써 교황령의 실질적인 영토권과 통치권을 보장해 주었다.
종교적 측면에서 하드리아노 1세는 성상 파괴주의 논쟁을 해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787년 개최된 제2차 니케아 공의회에 사절을 파견하여 성상 공경의 정당성을 승인하고, 동방 교회와의 일치를 도모했다. 비록 카를 대제가 주도한 프랑크 교회 측에서 공의회의 결정을 오해하여 반발한 '리브리 카롤리니(Libri Carolini)' 사건이 있었으나, 그는 성상 숭배와 공경을 명확히 구분하는 입장을 견지하며 가톨릭 교리를 수호했다.
그는 로마 시의 복구와 도시 정비에도 큰 공헌을 했다. 오랜 세월 방치되어 파손되었던 로마의 성벽을 보수하고, 고대 로마의 수로들을 재건하여 시민들에게 원활한 용수 공급이 가능하게 했다. 또한 성 베드로 대성전과 성 파울로 대성전을 비롯한 주요 성당들을 대대적으로 수리하고 장식하는 등 도시 인프라와 종교 시설 전반에 걸쳐 대규모 건축 사업을 전개했다.
795년 12월 25일 서거할 때까지 약 23년 동안 재위하며 교황권의 정치적 자립과 영토적 안정을 이루어냈다. 카를 대제는 그의 죽음을 진심으로 슬퍼하며 직접 추모시를 짓기도 했는데, 이는 당시 교황과 국왕 사이의 유대감이 얼마나 깊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하드리아노 1세는 비잔티움 제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프랑크 왕국과의 동맹을 통해 서유럽 중심의 새로운 중세 질서를 창출한 선구적인 교황으로 기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