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르 모방

피에르 모방(Pierre-Philibert Maubant, 1803~1839)은 프랑스 출신의 가톨릭 선교사로, 조선에 입국한 최초의 서양인 신부이다.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이었던 그는 조선 교구의 초대 교구장인 브뤼기에르 주교가 입국 전 서거하자 그 뜻을 이어받아 조선 선교의 임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그의 입국은 조선 천주교회사에서 서양인 성직자에 의한 직접적인 포교가 시작된 중요한 기점으로 평가받는다.

1836년 1월, 모방 신부는 상제(喪制) 복장으로 변장하여 의주 인근의 압록강을 건너 조선에 입국하는 데 성공했다. 당시 조선은 천주교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었으나, 그는 서울과 경기도, 충청도 일대의 공소를 비밀리에 순회하며 신자들에게 성사를 집전하고 복음을 전파했다. 그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헌신적으로 활동하며 불과 수년 만에 수천 명의 신자에게 세례와 견진성사를 베풀어 교세를 크게 확장시켰다.

모방 신부의 가장 핵심적인 업적 중 하나는 한국인 성직자 양성을 위한 기틀을 마련한 것이다. 그는 조선인 스스로 교회를 이끌어가야 한다는 신념 아래, 김대건(안드레아), 최양업(토마스), 최방제(프란치스코) 세 명의 소년을 신학생으로 선발했다. 그는 이들에게 기초적인 라틴어와 신학을 가르친 뒤 마카오에 있는 파리 외방전교회 극동대표부로 유학을 보내, 훗날 한국인 최초의 사제들이 탄생할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했다.

1839년 기해박해가 발생하여 천주교인들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이 시작되자, 모방 신부는 자신으로 인해 신자들이 고초를 겪는 것을 막기 위해 자수를 결심했다. 그는 앵베르 주교, 샤스탕 신부와 함께 포도청에 자진 출두하여 혹독한 고문과 신문을 견뎌냈으며, 끝까지 신앙을 지키며 다른 신자들을 보호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서양 선교사들의 입국 목적이 오직 종교적 사명에 있음을 당당히 밝혔다.

1839년 9월 21일, 모방 신부는 서울 새남터에서 군문효수형을 받고 순교했다. 그의 유해는 노고산에 임시 매장되었다가 이후 삼성산으로 옮겨졌으며, 현재는 명동대성당 지하 묘지에 안치되어 있다. 로마 가톨릭교회는 그의 공헌과 순교를 기려 1925년 비오 11세 교황에 의해 복자로 시복하였고,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으로 추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