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6년

836년은 9세기 전반에 해당하는 시기로, 한반도에서는 신라의 제42대 왕인 흥덕왕이 서거한 해이다. 흥덕왕은 재위 기간 동안 당나라와의 교류를 활발히 하고 장보고를 통해 청해진을 설치하는 등 해상권 확보에 주력했으나, 그의 사후 신라 왕실은 극심한 왕위 계승 분쟁에 휘말리게 되었다. 흥덕왕에게는 뒤를 이을 아들이 없었기에 사촌 동생인 김균정과 조카인 김제륭 사이에서 권력 투쟁이 발생하였으며, 이는 신라 하대의 정치적 혼란이 심화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왕위 계승을 둘러싼 갈등은 결국 무력 충돌로 이어졌다. 김균정과 김제륭의 세력이 맞붙은 이 내분에서 김제륭 측이 승리를 거두며 제43대 희강왕으로 즉위하였다. 패배한 김균정은 전사하였으며, 그의 아들인 김우징은 훗날을 도모하며 청해진의 장보고에게 몸을 의탁하게 되었다. 이 사건은 진골 귀족들 간의 세력 다툼이 중앙 정부의 안정성을 크게 해쳤음을 보여주며, 이후 신라 왕권이 급격히 약화되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동아시아의 정세를 살펴보면, 당나라는 문종 재위기로 환관들의 권력 남용이 극에 달해 국운이 기울고 있었다. 전년도인 835년에 발생한 감로의 변 이후 조정은 사실상 환관 세력에 의해 장악된 상태였으며, 황제의 권위는 땅에 떨어져 있었다. 일본에서는 인묘 천황의 조와(承和) 시대가 이어지고 있었으며, 견당사 파견을 통해 대륙의 문물을 수용하려는 노력이 지속되었다. 836년에는 견당사 일행이 당나라로 출발하려 했으나 기상 악화와 조난 사고로 인해 항해에 실패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서아시아에서는 아바스 왕조의 칼리파 알 무타심이 수도를 바그다드에서 사마라로 옮긴 해이다. 이는 바그다드 시내에서 발생하던 기존 주민들과 튀르크계 노예 군단인 굴람 사이의 마찰을 피하고, 칼리파의 친위 세력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조치였다. 사마라로의 천도는 아바스 왕조의 정치 중심지가 이동했음을 의미하며, 이후 약 50여 년간 사마라는 이슬람 제국의 화려한 수도로서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유럽에서는 비잔티움 제국의 테오필루스 황제가 통치하며 이슬람 세력의 침공에 맞서고 있었다. 동시에 제국 내부적으로는 성상 파괴주의 논쟁의 막바지 시기를 지나고 있었으며, 문화적으로는 고전 그리스 문헌의 필사와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는 '비잔티움 르네상스'의 기틀이 마련되고 있었다. 서유럽의 프랑크 왕국에서는 경건왕 루도비쿠스 1세의 치세 말기로, 그의 아들들 사이에서 영토 분할과 후계 구도를 둘러싼 갈등이 고조되어 장차 제국이 분열될 전조를 보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