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흐신 야즈즈(Tahsin Yazıcı, 1892~1971)는 터키의 군인이자 정치인으로, 한국 전쟁 당시 유엔군의 일원으로 파병된 터키 여단의 초대 여단장을 지낸 인물이다. 그는 6.25 전쟁에서 터키군의 용맹함을 전 세계에 알린 지휘관으로 평가받으며, 특히 중공군의 대공세 속에서 뛰어난 방어전과 리더십을 발휘했다. 전쟁 이후에는 터키 정계에 입문하여 활동하기도 했다.
1892년 오스만 제국의 영토였던 모나스티르(현재의 북마케도니아 비톨라)에서 태어난 그는 1912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며 군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갈리폴리 전투에 참전하여 실전 경험을 쌓았으며, 이후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가 이끄는 터키 독립 전쟁에도 참여하여 공을 세웠다. 그는 터키 공화국 수립 이후 기갑 부대 운용의 전문가로 성장하며 군 내 주요 보직을 역임했다.
1950년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그는 준장의 계급으로 터키 제1여단인 '북극성 부대'를 이끌고 한국에 도착했다. 그의 가장 큰 업적은 1950년 11월에 벌어진 군우리 전투에서 나타났다. 당시 중공군의 기습적인 포위망에 갇힌 위기 상황에서 그는 퇴각하라는 권고를 거부하고 "우리는 이곳을 지키러 왔지, 후퇴하러 온 것이 아니다"라며 정면 승부를 선택했다. 터키 여단은 치열한 백병전을 치르며 중공군을 저지했고, 이는 미 제2보병사단이 안전하게 철수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전쟁 중 소장으로 승진한 그는 1951년 본국으로 귀환했으며, 이후 중장으로 예편했다. 퇴역 후에는 정치에 입문하여 민주당(Demokrat Parti) 소속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활동했다. 그러나 1960년 터키에서 발생한 군사 쿠데타 이후 민주당 인사들에 대한 숙청 과정에서 체포되어 수감되는 시련을 겪기도 했다. 이후 사면되어 석방되었으며 1971년 앙카라에서 사망했다. 그는 오늘날 한국과 터키 양국에서 '혈맹'의 상징이자 참된 군인 정신을 보여준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