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믈린의 위기(Кремлёвский кризис)는 1980년대 말 소련에서 발생한 정치적 혼란과 권력 다툼을 의미한다. 이 위기는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구조조정)와 글라스노스트(개방정책) 등의 개혁 조치가 시행되면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개혁은 소련 내부에서의 반발과 긴장을 초래하였다. 특히, 보수파 세력은 개혁의 진전을 저지하고 기존 체제를 유지하고자 하여 정치적 갈등이 심화되었다.
크레믈린 내부에서의 권력 투쟁은 곧 국민들의 불만으로 이어졌다. 경제의 어려움, 생활 수준의 저하, 그리고 유럽 및 아시아 내 여러 민족들의 민족주의 부상 등의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국민들은 정부의 신뢰를 잃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1989년 동유럽에서의 사회주의 정권들이 무너지는 데 큰 영향을 미쳤으며, 소련 내에서의 민주화 요구가 더욱 거세졌다.
1991년, 크레믈린의 위기는 결국 소련의 붕괴로 이어졌다. 8월, 보수파 세력이 고르바초프를 압박하여 쿠데타를 감행하였으나, 보리스 옐친을 중심으로 한 반대 세력의 저항에 부딪혀 실패하게 된다. 이 사건은 크레믈린 내 권력의 불안정을 드러내는 결정적인 순간이 되었고, 결국 고르바초프의 권력은 크게 약화되었다. 이후 옐친은 러시아 연방의 대통령으로 선출되었고, 소련은 공식적으로 1991년 12월에 해체되었다.
크레믈린의 위기는 단순히 소련의 내부 문제에 그치지 않고, 국제 정치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냉전의 종식과 동유럽의 민주화 물결은 세계 각국의 정치적 지형을 변화시켰고, 이후 러시아는 새로운 정치적 방향을 모색하게 되었다. 이 사건은 현대 러시아의 정치 및 사회적 상황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사적 기초를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