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레시어(Cuirassier)는 근세 유럽에서 활동한 중기병의 일종으로, 가슴과 등을 보호하는 철제 흉갑(Cuirass)을 착용한 것에서 그 명칭이 유래했다. 이들은 중세 기사 계급이 몰락하고 전신 갑옷이 사라져 가던 시기에 등장하여 기동성과 방어력을 동시에 확보하려 했던 병종이다. 15세기 말 독일의 '라이터(Reiter)' 기병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으며, 이후 17세기부터 19세기 초반까지 유럽 각국의 핵심적인 충격 기병 전력으로 운용되었다.
이들의 가장 큰 특징은 단단한 철제 또는 강철로 제작된 흉갑과 투구다. 화기의 발달로 인해 전신을 감싸는 무거운 갑옷이 실효성을 잃자, 퀴레시어는 치명적인 부위인 몸통만을 집중적으로 방어하는 형태를 취했다. 주 무장으로는 무겁고 긴 직선형 장검인 팔시온이나 기병용 사벨을 사용했으며, 보조 무기로는 근거리 사격용 권총을 휴대했다. 또한 퀴레시어는 보병 대열을 돌파하기 위한 강력한 충격력을 얻기 위해 크고 힘이 센 대형마를 기승마로 사용했다.
전술적 측면에서 퀴레시어는 전선의 결정적인 순간에 투입되는 타격 부대였다. 이들은 밀집 대형을 유지하며 적진으로 돌격하여 보병 방진을 무너뜨리거나 적 기병대와의 교전에서 우위를 점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특히 나폴레옹 전쟁 시기에 그 위상이 정점에 달했는데,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퀴레시어 연대를 대규모로 편성하여 승기를 잡는 결정적인 수단으로 활용했다. 당시 퀴레시어의 흉갑은 먼 거리에서 발사된 소총탄을 튕겨낼 정도의 방호력을 갖추고 있어 보병들에게 큰 위협이 되었다.
19세기 중반 이후 화기의 살상력과 정확도가 비약적으로 향상되면서 퀴레시어의 입지는 급격히 좁아졌다. 강선 소총과 후장식 소총의 등장은 기병이 접근하기도 전에 궤멸적인 타격을 입혔으며, 더 이상 흉갑만으로는 현대적인 탄환을 막아낼 수 없게 되었다. 1870년 보불전쟁을 거치며 이들의 전술적 유효성은 한계에 다다랐고, 제1차 세계대전 초기까지 일부 국가에서 운용되었으나 참호전과 기관총, 전차의 등장으로 인해 결국 실전용 병종으로서 전장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오늘날 퀴레시어는 실전 병과가 아닌 전통 계승과 의전 목적으로 존재한다. 프랑스의 공화국 수비대나 영국의 근위 기병대 등은 여전히 과거의 화려한 흉갑과 투구를 착용하고 국가 주요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 이는 퀴레시어가 근대 유럽 군사사에서 차지했던 상징적인 위치와 중기병 특유의 위용을 현대까지 전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