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활란(崔活蘭, 1898~1983)은 일제강점기부터 활동한 대한민국의 간호사이자 간호 행정가, 교육자이다. 한국 간호계의 선구자로 평가받으며, 대한간호협회의 초대 회장을 역임하여 한국 간호의 현대화와 전문화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그는 간호를 단순한 조력 행위가 아닌 전문적인 의료 서비스로 정립하기 위해 평생을 헌신한 인물이다.
함경남도 함흥 출신인 최활란은 일찍이 근대 교육의 기회를 가졌다. 1916년 세브란스병원 간호부양성소(현 연세대학교 간호대학)를 졸업한 후 간호사로서 실무 경험을 쌓았다. 이후 미국으로 유학하여 피바디 대학(Peabody College)과 컬럼비아 대학교 등에서 선진 간호학과 보건학을 수학하였다. 이러한 해외 유학 경험은 그가 한국 간호의 체계를 서구적 기준으로 재정립하고 전문성을 강화하는 토대가 되었다.
해방 이후 최활란은 흩어져 있던 간호 조직을 통합하고 한국 간호사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앞장섰다. 1946년 ‘조선간호협회’(현 대한간호협회)가 창립될 당시 초대 회장으로 추대되어 협회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그는 국제간호협의회(ICN) 가입을 추진하여 한국 간호가 세계 무대에 진출할 수 있는 통로를 열었으며, 간호사의 자질 향상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과 자격 규정 강화에 힘썼다.
그의 활동은 민간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미군정기 및 대한민국 정부 수립 초기, 보건후생부 간호사업국장 등의 공직을 맡아 국가 차원의 간호 행정 체계를 구축하였다. 전쟁과 질병으로 피폐해진 사회를 재건하기 위해 공중보건 간호와 감염병 예방 활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였으며, 이는 한국의 초기 보건 의료 시스템이 정착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최활란은 평생을 간호 전문직의 위상 제고와 후학 양성에 매진하였다. 그의 노력으로 한국의 간호 교육은 체계적인 학문적 기반을 갖추게 되었으며, 간호사가 의료 현장의 핵심 인력으로 인정받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일제강점기의 억압과 전쟁의 혼란 속에서도 간호사의 윤리 의식과 전문성을 강조하며 한국 간호 역사의 기틀을 세운 공로를 인정받아 오늘날까지 한국 간호의 어머니 중 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