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조의 성립과 그 전개 과정을 단순한 왕조의 교체로 보지 않고, 사회 구조와 사상의 근본적 변화가 일어난 '혁명'의 과정으로 파악하는 시각이 존재한다. 특히 고려 말의 모순을 극복하고 성리학적 이상 국가를 건설하려 했던 신진사대부의 등장은 한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으로 평가받는다. 이는 단순히 권력의 주체가 바뀐 것을 넘어, 국가의 운영 원리와 사회적 가치 체계가 전면적으로 재편된 사건이었다.
조선 건국의 핵심 논리인 역성혁명(易姓革命)은 맹자의 민본주의 사상에 근거하여, 천명을 잃은 군주를 폐하고 새로운 통치자를 세울 수 있다는 정당성을 제공했다. 정도전을 비롯한 건국 주도 세력은 토지 제도를 개혁하여 권문세족의 경제적 기반을 해체하고 과전법을 시행함으로써 국가 재정을 확충하고 민생을 안정시키려 했다. 이러한 일련의 개혁은 불교 중심의 귀족 사회에서 유교 중심의 관료 사회로 이행하는 거대한 사회적 변혁이었다.
조선 중기 이후 발생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라는 양란은 기존 체제의 한계를 드러내며 새로운 변혁의 필요성을 촉발했다. 이 시기 등장한 실학(實學)은 성리학의 관념성을 비판하고 토지 제도, 조세 제도, 신분제 등 전 분야에 걸친 개혁안을 제시했다. 실학자들의 사상은 비록 당대 정책에 전면적으로 반영되지는 못했으나, 근대적 의식의 싹을 틔우고 조선 사회 내부의 자생적 근대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혁명적 성격을 띤다.
19세기에 접어들며 세도 정치의 폐단과 삼정의 문란이 극에 달하자, 피지배층인 농민들은 적극적인 저항을 통해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홍경래의 난을 시작으로 전국적으로 확산된 농민 봉기는 동학농민혁명에서 정점을 이루었다. 이는 봉건적 신분 질서를 타파하고 외세의 침략에 맞서 민족의 자율성을 지키려 했던 아래로부터의 혁명적 움직임이었으며, 조선이라는 시대가 종말을 고하고 근대로 이행하는 결정적인 동력이 되었다.
결론적으로 '조선, 혁명의 시대'라는 틀은 조선사를 정체된 시기로 보지 않고, 끊임없는 갈등과 개혁의 시도로 점철된 역동적인 과정으로 재해석한다. 건국 초기 위로부터의 혁명에서 시작하여 후기 아래로부터의 혁명으로 이어지는 흐름은 한국인의 주체적인 역사 발전 의지를 보여준다. 이러한 관점은 오늘날의 한국 사회를 형성한 역사적 뿌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