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회는 군주가 통치하는 제국 체제하에서 입법 기능을 담당하던 대의 기관을 의미한다. 역사적으로는 신성 로마 제국, 독일 제국, 일본 제국 등에서 운영되었으며, 각 국가의 헌법적 기반에 따라 권한과 구성 방식이 상이했다. 근대적 의미의 제국의회는 절대군주제에서 입헌군주제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국민의 참정권을 제한적으로나마 수용하고 국정 운영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설치된 경우가 많았다.
독일 제국의 제국의회(Reichstag)는 1871년 독일 통일 이후 성립된 입법 기구이다. 당시 유럽에서 드물게 만 25세 이상의 남성에게 보통·평등 선거권을 부여하는 민주적인 선거 제도를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의회는 예산안 심의권과 입법권을 보유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 수반인 제국 재상의 임면권이 없었으며 군대 통수권과 외교권은 황제에게 귀속되어 권한이 제약적이었다. 이러한 구조적 한계로 인해 제국의회는 행정부를 실질적으로 견제하기보다는 황제의 권위를 뒷받침하거나 예산안을 협상하는 보조적 역할에 머물렀다.
일본 제국의 제국의회는 1889년 공포된 대일본제국 헌법에 따라 설치되어 1890년부터 1947년까지 존속했다. 이는 작위를 가진 화족과 칙임 의원으로 구성된 귀족원, 그리고 선거로 선출된 중의원의 양원제를 채택하였다. 초기에는 납세액에 따라 투표권이 제한되는 제한 선거령을 시행했으나, 1925년 보통선거법 제정으로 남성 보통선거가 실시되었다. 일본의 제국의회 역시 법률안 협찬권과 예산안 심의권을 가졌으나, 주권은 천황에게 있었으며 군의 통수권은 의회의 관여를 받지 않는다는 원칙으로 인해 군부의 독주를 막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중세와 근세 신성 로마 제국의 제국의회(Reichstag)는 근대적 입법 기구와는 성격이 다른 신분제 의회였다. 이는 황제와 영방 군주, 제국 도시의 대표들이 모여 제국의 중대사를 결정하던 회의체였다. 초기에는 비정기적으로 소집되었으나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 이후에는 레겐스부르크에서 상설 의회로 운영되었다. 이는 황제의 권력을 제한하고 제국 내 각 구성 단위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연방제적 성격을 띠었으며, 1806년 제국이 해체될 때까지 유지되었다.
제국의회는 근대 국가로의 이행기에서 민의를 국정에 반영하려는 초기 단계의 시도였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가 있다. 비록 강력한 군주권이나 행정부의 권한 아래 놓여 있었으나, 정당 정치의 발달과 선거권 확대의 장으로서 기능하며 민주주의적 정치 경험을 축적하는 토대가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제국 체제가 붕괴함에 따라, 각국의 제국의회는 연방의회나 국회 등의 명칭으로 계승 및 개편되며 현대적인 의회 민주주의 형태로 발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