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독립촉성전국노동총연맹(약칭 대한노총)은 1946년 3월 10일 결성된 한국의 대표적인 우익 노동단체이다. 해방 직후 공산주의 계열의 조선전국노동조합평의회(전평)가 노동 운동을 주도하며 사회적 영향력을 확대하자, 이에 대응하기 위해 우익 정치 세력과 자본가 계층의 지원을 받아 설립되었다. 이 조직은 이승만, 김구 등 우익 지도자들의 정치적 노선을 지지하며 반공주의 노동 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수행하였다.
결성 초기 대한노총은 전평이 주도하는 파업과 투쟁에 맞서 사업장을 방어하고 조업을 지속시키는 이른바 '생산 보국'의 가치를 내세웠다. 특히 1946년 9월 총파업 당시 전평의 정치적 공세에 정면으로 맞서며 우익 진영의 실력 행사 기구로서 기능하였다. 이 과정에서 전평 측과의 물리적 충돌이 빈번하게 발생하였으며, 미군정의 지원과 묵인 하에 전평의 세력을 약화시키고 우익 중심의 노동 질서를 구축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대한노총은 국가 공인 노동단체로서의 지위를 확립하였다. 초기에는 이승만 정권의 정치적 기반 역할을 수행하며 정부의 정책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어용 노조의 성격을 띠기도 하였다. 전국 각지의 주요 산업 시설에 지부를 설치하며 조직을 확장하였고, 노동자의 경제적 권익 향상보다는 국가 재건과 반공 체제 공고화라는 국가적 목표에 초점을 맞춘 활동을 전개하였다.
1950년대에 들어서면서 조직 내부의 파벌 갈등과 정권의 하수인 역할에 대한 비판이 내부적으로 제기되기 시작하였다. 1960년 4·19 혁명 이후 민주화 열기 속에서 조직의 개편 요구가 분출되었으나, 1961년 5·16 군사정변 이후 국가재건최고회의의 포고령에 의해 기존의 노동 조직들이 해체되는 과정을 겪었다. 이후 산별 노조 체제로 재편되면서 오늘날의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으로 이어지는 역사적 기원이 되었다.
대한노총의 활동은 한국 노동 운동이 이념적 대립의 장이 되는 데 큰 영향을 미쳤으며, 산업화 과정에서 국가 주도의 노사 관계 모델이 정착되는 토대가 되었다. 노동자의 자율적인 권리 투쟁보다는 국가의 안보와 경제 발전을 우선시하는 보수적 노동 운동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한국 현대사 및 노동사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