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도영

장도영(張都暎, 1923~2012)은 대한민국의 군인이자 정치인으로, 1961년 5·16 군사정변 당시 육군참모총장으로서 정변의 전면에 나섰던 인물이다. 평안북도 선천 출신인 그는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의 동양대학 재학 중 학도병으로 징집되어 일본군 장교로 복무했다. 광복 후 귀국하여 군사영어학교를 졸업하고 대한민국 국군 창설에 참여했으며, 6·25 전쟁 당시에는 제6사단장 등을 역임하며 사창리 전투와 용문산 전투 등 주요 전투를 지휘했다.

1961년 5월 16일, 박정희를 중심으로 한 소장파 장교들이 군사정변을 일으켰을 당시 장도영은 육군참모총장의 위치에 있었다. 그는 정변 발생 초기 이를 진압하려는 움직임과 동조하려는 태도 사이에서 모호한 입장을 취했으나, 결국 정변 세력의 요구를 받아들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내각수반, 국방부 장관 등의 직책을 맡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그는 군사정권 초기 대외적으로 정변의 정당성을 알리는 명목상의 최고 지도자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실권을 장악하고 있던 박정희 등 정변 주체 세력과의 갈등은 피할 수 없었다. 군사정권 내부의 권력 투쟁 과정에서 장도영의 영향력을 경계한 박정희 세력은 그를 정변 주도 세력에서 배제하기 시작했다. 정변 발생 약 두 달 만인 1961년 7월, 장도영은 이른바 '반혁명 사건'에 휘말려 모든 공직에서 해임되었으며, 군사재판에 회부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이는 박정희가 자신의 권력 기반을 공고히 하기 위해 단행한 대대적인 숙청의 일환이었다.

1962년 형집행정지로 석방된 장도영은 미국으로 망명하여 학자의 길을 걸었다. 미시간 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웨스턴 미시간 대학교에서 정치학 교수로 재직하며 오랜 기간 교단에 섰다. 그는 망명 생활 중 회고록인 『망향』 등을 집필하여 5·16 군사정변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과 자신의 입장을 기록했다. 이후 2012년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지병으로 별세하기까지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파란만장했던 삶을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