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국환(張國煥, 1883~1961)은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이다. 본관은 인동(仁同)이며, 경상남도 밀양 출신이다. 그는 조국의 주권 회복을 위해 무력 항쟁을 포함한 다각적인 독립운동에 투신하였으며, 특히 의열단 활동과 관련하여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1919년 전국적으로 3·1 운동이 일어나자 장국환은 밀양 지역의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그는 윤세주(尹世胄) 등 동지들과 함께 밀양 장날을 이용하여 독립 만세를 외치며 군중의 항일 의식을 고취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그는 일제 경찰의 감시 대상이 되었으나, 이에 굴하지 않고 더욱 체계적인 독립운동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는 단순한 만세 운동을 넘어 일제의 주요 기관을 파괴하고 요인을 암살하는 무력 투쟁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의열단(義烈團)에 가입하였다. 1920년에는 의열단 단원들이 국내로 폭탄을 반입하여 조선총독부와 경찰서 등 식민 통치 기구를 파괴하려던 이른바 ‘제1차 경성 폭탄 반입 사건’에 관여하였다. 비록 계획이 사전에 누설되어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으나, 그의 활동은 일제의 식민 통치에 큰 위협을 가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장국환은 법원에서 징역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도 그는 조국 독립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으며, 일제의 가혹한 탄압 속에서도 독립운동의 기반을 유지하기 위해 애썼다. 1945년 광복 이후에는 고향인 밀양에서 지내며 국가 재건에 기여하다가 1961년 별세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1963년 대통령표창을,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