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코시 존슨(Nkosi Johnson, 1989년 2월 4일 ~ 2001년 6월 1일)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아동 에이즈 인권 운동가이다. 에이즈를 가지고 태어난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짧은 생애 동안 에이즈 환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차별에 맞서 싸웠으며, 전 세계에 에이즈 환자도 평범한 인간으로서 존중받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에이즈의 위험성과 환자의 인권을 공론화한 상징적인 인물로 평가받는다.
은코시 존슨은 1989년 요하네스버그 동부의 마을에서 에이즈를 앓고 있던 어머니에게서 태어났으며, 태어날 때부터 HIV 확진 판정을 받았다. 친어머니가 병세로 보살필 여력이 없게 되자 홍보 담당자였던 게일 존슨에게 입양되어 '은코시 존슨'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1997년 은코시가 멜빌의 한 초등학교에 입학하려 했을 때, 그의 감염 사실을 안 학부모와 학교 측의 거센 반대에 부딪혔다. 이 사건은 남아프리카 공화국 내에서 에이즈 환자에 대한 차별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으며, 결국 대법원이 에이즈를 이유로 입학을 거부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리는 계기가 되었다.
그가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결정적인 사건은 2000년 더반에서 열린 제13차 국제 에이즈 컨퍼런스에서의 연설이었다. 당시 11세였던 은코시는 야위고 가녀린 모습으로 단상에 올라 에이즈 환자들을 향한 차별을 멈춰달라고 호소했다. 그는 "우리를 돌보고 수용해달라. 우리는 모두 같은 인간이다. 우리는 걷고 말할 수 있으며 다른 모든 사람과 똑같은 필요를 가진 정상적인 사람들이다. 우리를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는 모두 똑같다"라는 내용의 연설을 통해 전 세계인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은코시는 생전 양어머니와 함께 HIV에 감염된 어머니와 아이들이 함께 지낼 수 있는 보호 시설인 '은코시의 안식처(Nkosi's Haven)'를 설립했다. 이는 에이즈 환자들이 사회적 낙인 없이 안전하게 보호받고 교육받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는 단순히 환자로 남기보다 능동적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에이즈 치료제 보급과 정부의 적극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데 앞장섰다.
2001년 6월 1일, 은코시 존슨은 1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전 대통령 넬슨 만델라는 그를 "생존을 위한 투쟁의 아이콘"이라 칭송하며 깊은 애도를 표했다. 은코시는 사후에 그 공로를 인정받아 국제 아동 평화상을 수상했으며, 그의 삶은 에이즈에 대한 무지와 공포를 극복하고 인권을 존중하는 문화를 정착시키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