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

'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Pride and Prejudice and Zombies)는 미국의 작가 세스 그레이엄 스미스가 2009년에 발표한 매시업(Mash-up) 소설이다. 제인 오스틴의 고전 명작 '오만과 편견'에 현대적인 좀비 호러 요소를 결합한 이 작품은 출간 직후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원작의 문장 중 약 85%를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좀비가 창궐한 가상의 19세기 영국을 배경으로 설정하여 독특한 재미를 선사한다.

이 작품의 배경은 원인 불명의 역병으로 인해 죽은 자들이 살아나 산 사람을 공격하는 이른바 '낙진(the stricken)' 시대의 영국이다. 사회적 지위와 결혼이 중요한 화두였던 원작의 틀 위에 생존을 위한 투쟁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이 추가되었다. 주인공 베넷 가문의 다섯 자매는 원작처럼 교양을 쌓는 대신 중국으로 건너가 소림 무술과 병기 다루는 법을 익힌 숙련된 전사들로 묘사된다. 이들은 드레스를 입고 무도회에 참석하면서도 치마 밑에 단검을 숨기고 좀비의 습격에 대비한다.

인물 관계의 핵심인 엘리자베스 베넷과 피츠윌리엄 다시의 갈등과 로맨스 역시 좀비라는 매개체를 통해 변주된다. 엘리자베스는 자신의 무술 실력에 자부심을 가진 강인한 여성으로 그려지며, 다시는 좀비 사냥꾼으로서의 명성을 떨치는 인물로 등장한다. 두 사람의 첫 만남과 오해, 그리고 이를 극복하는 과정은 좀비 무리를 퇴치하는 액션 장면과 함께 전개된다. 원작의 우아한 대화 속에 좀비의 머리를 베거나 내장을 쏟는 고어한 묘사가 삽입되는 부조화가 이 소설의 주요 특징이다.

이 소설은 문학계에 '클래식 매시업'이라는 새로운 장르적 유행을 불러일으켰다. '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의 성공 이후 '센스 앤 센서빌리티와 바다 괴물', '에이브러햄 링컨: 뱀파이어 헌터'와 같이 기존의 역사나 고전에 초자연적 요소를 가미한 작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는 엄숙한 고전 문학을 대중문화의 하위 장르와 결합함으로써 젊은 독자층의 관심을 유도하고, 고전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새로운 문법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6년에는 버 스티어스 감독에 의해 동명의 영화로 제작되었다. 영화는 소설의 설정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시각적인 액션을 강화하여 베넷 자매들의 전투 능력을 입체적으로 보여주었다. 릴리 제임스와 샘 라일리가 주연을 맡아 원작의 로맨틱한 분위기와 좀비 영화의 긴장감을 동시에 구현하려 노력했다. 소설만큼의 폭발적인 흥행을 기록하지는 못했으나, 독창적인 세계관을 영상으로 옮겼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