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오 산텔리아(Antonio Sant'Elia, 1888-1916)는 이탈리아의 건축가이자 미래주의(Futurism) 운동의 핵심 인물이다. 그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산업 혁명 이후 급격히 변화하는 기술적 진보와 기계 문명을 건축 이론과 결합하려 노력했다. 산텔리아는 기존의 고전적인 양식과 장식에 얽매인 건축 체계를 비판하며, 현대 도시가 갖추어야 할 역동성과 기능성을 강조하는 급진적인 비전을 제시했다. 비록 제1차 세계대전 중에 요절하여 자신의 설계안을 실제 건물로 남기지는 못했으나, 그가 남긴 도면과 사상은 현대 건축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는 1914년 밀라노에서 열린 '새로운 도시(La Città Nuova)' 전시회를 통해 자신의 건축적 이상을 세상에 공개했다. 같은 해 발표된 '미래주의 건축 선언(Manifesto dell'architettura futurista)'에서 산텔리아는 건축을 계속해서 변화하고 재구성되는 살아있는 유기체로 정의했다. 그는 과거의 정적인 아름다움 대신 철, 유리, 콘크리트와 같은 신재료를 사용하여 기계의 속도감과 힘을 표현하는 것이 현대 건축의 본질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역사적 절충주의에 빠져 있던 당시 유럽 건축계에 큰 충격을 주었으며, 건축을 예술의 영역에서 기술과 산업의 영역으로 확장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산텔리아의 대표적인 구상인 '새로운 도시'는 거대한 규모의 초고층 건물들이 기하학적으로 배치된 유토피아적 대도시의 모습을 담고 있다. 그는 도시를 단순히 건물의 집합이 아닌, 거대한 기계 장치처럼 유기적으로 작동하는 시스템으로 간주했다. 그의 도면 속에는 계단식 주거 단지, 건물의 외벽을 타고 수직으로 이동하는 외부 승강기, 그리고 공중 통로로 복잡하게 연결된 고층 빌딩들이 등장한다. 이러한 비전은 당시 기술로는 구현하기 어려운 선구적인 것이었으며, 현대 도시의 입체적인 구조를 예견한 결과물이었다.
교통 체계에 대한 그의 통찰 또한 매우 혁신적이었다. 산텔리아는 도시의 교통 혼잡을 해결하기 위해 보행자와 차량, 기차의 이동 경로를 여러 층으로 분리하는 다층적 교통망을 제안했다. 비행기 계류장과 기차역이 도심 중심부의 거대 건물과 직접 결합하는 등, 교통 인프라와 주거 시설이 하나로 통합된 형태를 설계했다. 이는 이동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려는 미래주의적 열망의 투영이었으며, 훗날 메가스트럭처(Megastructure) 담론과 하이테크 건축의 이론적 토대가 되었다.
산텔리아는 1916년 제1차 세계대전 중 이손초 전투에서 전사하며 28세라는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그가 남긴 것은 수백 점의 세밀한 도면뿐이었지만, 그 속에 담긴 대담한 선과 공간 구성은 이후 아방가르드 예술가들과 건축가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었다. 특히 영화 '메트로폴리스'나 '블레이드 러너'와 같은 SF 영화의 도시 배경 설계에 직접적인 미학적 영향을 주었으며, 그가 주창한 기능적이고 기술 지향적인 건축관은 르 코르뷔지에를 비롯한 근대 건축 거장들의 초기 사상 형성에도 큰 역할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