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베르트 하임(Aribert Heim)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친위대(SS) 소속 군의관으로 활동하며 수많은 수감자를 학살한 인물이다. 1914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서 태어난 그는 빈 대학에서 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나치당에 입당했으며, 무장친위대에 자원하여 군의관의 길을 걸었다. 그는 마우트하우젠 수용소 등에서 자행한 잔혹한 생체 실험으로 인해 '죽음의 의사(Doctor Death)'라는 악명 높은 별명을 얻었다.
그의 잔혹 행위는 주로 1941년 마우트하우젠 수용소에서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다. 하임은 수감자들을 대상으로 마취 없이 장기 절제 수술을 시행하거나, 심장에 직접 가솔린, 물, 페놀 등을 주입하여 사망에 이르는 과정을 관찰하는 등 반인륜적인 실험을 반복했다. 또한 살해한 수감자의 머리를 삶아 살점을 제거한 뒤 그 해골을 자신의 책상 위 장식품으로 사용하는 등 엽기적인 행각을 벌였다는 생존자들의 증언이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행위들은 의학적 목적이라기보다 가학적인 유희에 가까웠던 것으로 평가받는다.
전쟁이 끝난 후 하임은 미군에 의해 체포되었으나, 그의 구체적인 범죄 사실이 드러나기 전이었기에 곧 석방되었다. 이후 그는 독일 바덴바덴에서 산부인과 의사로 평범하게 생활하며 가족을 부양했다. 그러나 1962년 독일 수사 당국이 그의 과거 행적을 파악하고 체포 영장을 발부하자, 그는 수사망을 피해 돌연 자취를 감추었다. 이후 수십 년 동안 시몬 비젠탈 센터를 비롯한 나치 추적 단체들은 그를 '가장 악질적인 미검거 나치 전범' 목록 상단에 올리고 전 세계를 뒤쫓았다.
하임의 행방은 오랜 시간 베일에 싸여 있었으나, 2009년 독일 공영 방송과 언론의 추적 결과 그가 이집트 카이로에서 오랫동안 은신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는 '타레크 파리드 후세인(Tarek Farid Hussein)'이라는 가명을 사용하며 이슬람교로 개종했고, 현지인들과 교류하며 은둔 생활을 이어갔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그는 1992년 카이로의 한 호텔에서 직장암으로 사망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의 아들이 보관하고 있던 유품과 서류들이 그의 정체를 입증하는 결정적인 증거가 되었다.
아리베르트 하임은 아우슈비츠의 요제프 멩겔레와 더불어 나치 생체 실험의 잔인성을 상징하는 인물로 남았다. 그는 수많은 인명 피해를 입히고도 수십 년간 법망을 피해 도피 생활을 지속했으며, 끝내 법정의 심판을 받지 않은 채 생을 마감했다. 그의 사례는 전범 추적의 한계와 더불어 역사의 단죄가 얼마나 어려운 과정인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인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