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정 전투(石井戰鬪)는 고려 말기인 1390년(공양왕 2년)에 이성계가 이끄는 고려군이 전라도 석정(현재의 전라북도 고창 지역으로 추정)에서 왜구를 격퇴한 전투다. 당시 고려는 해안가뿐만 아니라 내륙 깊숙이 침입하는 왜구의 약탈로 인해 국가적 위기 상황에 처해 있었다. 특히 왜구는 단순한 도적 떼를 넘어 조직적인 군사 활동을 전개하며 고려의 조운선과 창고를 습격하는 등 경제적 기반을 심각하게 위협했다.
왜구는 호남 지역을 장악하기 위해 대규모 병력을 동원하여 내륙으로 진격했다. 이에 고려 조정은 당대 최고의 명장이었던 이성계를 양광·전라·경상 삼도 도지휘사로 임명하여 대응하게 했다. 이성계는 휘하의 가별초를 비롯한 정예 병력을 이끌고 적의 이동 경로를 차단하며 압박했다. 석정 근처에서 벌어진 격전에서 이성계는 뛰어난 궁술과 전술적 기동을 바탕으로 왜구의 기세를 꺾는 데 성공했다.
이 전투에서 이성계는 적의 주요 지휘관들을 직접 사살하거나 진두지휘하며 병사들의 사기를 높였다. 특히 이성계의 사병 조직이자 정예 기병이었던 가별초는 강력한 돌파력을 발휘하며 왜구의 밀집 대형을 무너뜨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석정 전투의 승리는 왜구의 호남 내륙 진출을 저지했을 뿐만 아니라, 호남 민중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중요한 성과를 거두었다.
전투의 결과로 호남 일대의 치안이 회복되었으며, 민심은 왜구를 연달아 물리친 이성계에게 더욱 집중되었다. 이는 황산 대첩과 더불어 이성계가 군사적 영웅으로 부상하는 데 큰 기여를 한 사건이다. 석정 전투를 포함한 연이은 승리는 이성계가 정치적 기반을 공고히 하고, 훗날 고려를 대신하여 조선을 건국하는 과정에서 핵심적인 군사적 명분과 지지 세력을 확보하는 바탕이 되었다.
오늘날 석정 전투의 구체적인 장소에 대해서는 학계의 연구가 지속되고 있으나, 대체로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석정리 일대가 격전지였던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지역은 호남 내륙으로 향하는 주요 길목이자 전략적 요충지로서, 당시 왜구의 침입 경로를 차단하기 위해 반드시 사수해야 했던 지점이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