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0년은 로마 제국과 동아시아의 정세가 급변하던 시기였다. 로마 제국에서는 테오도시우스 1세가 통치하고 있었으며, 이 해에 역사적으로 중요한 테살로니카 학살 사건이 발생했다. 테살로니카의 로마 총독이 폭동 중에 살해되자, 분노한 테오도시우스 1세는 군대를 보내 시민 약 7,000명을 학살하도록 명령했다. 이 사건은 로마 제국 내에서 큰 정치적, 종교적 파장을 일으켰다.
테살로니카 학살 이후, 밀라노의 주교 암브로시우스는 황제의 잔혹한 행위를 규탄하며 그를 파문했다. 황제는 교회 출입을 금지당했으며, 결국 암브로시우스의 요구에 굴복하여 성탄절에 공개적인 참회를 했다. 이는 세속 군주가 교회의 도덕적 권위 앞에 무릎을 꿇은 상징적인 사건으로 기록되었으며, 향후 유럽 역사에서 정교 관계와 교권 확립에 중요한 선례가 되었다.
동아시아에서는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이 각축을 벌이던 시기였다. 고구려에서는 고국양왕이 재위하며 국력을 다지고 있었고, 백제에서는 진사왕이 통치하며 고구려와의 군사적 대립을 지속했다. 특히 이 시기는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이 등극하기 직전의 시기로, 고구려가 북방과 남방으로 세력을 확장하기 위한 전략적 준비를 하던 단계였다. 백제는 관미성 등 주요 거점을 두고 고구려의 압박에 대응하며 치열한 영토 분쟁을 이어갔다.
중국 대륙은 위진남북조 시대의 혼란이 계속되고 있었다. 남방의 동진은 효무제의 치하에서 내부적인 안정을 꾀했으나, 북방에서는 선비족의 탁발규가 세운 북위가 세력을 빠르게 확장하며 화북 지역의 새로운 강자로 떠오르고 있었다. 이러한 분열과 대립 속에서 불교와 도교가 민중 사이에서 확산되었으며, 이는 각국의 통치 이념과 문화적 정체성 형성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390년경의 세계는 종교적 권위의 성장과 국가 간의 치열한 영토 확장 전쟁이 교차하는 지점이었다. 서양에서는 기독교가 제국의 정신적 지주로 확고히 자리 잡는 과정이 진행되었고, 동양에서는 삼국의 항쟁과 중국의 분열을 통해 새로운 시대적 질서가 모색되고 있었다. 이러한 흐름은 4세기 말의 국제 정세를 규정짓는 핵심적인 요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