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고역(使使苦役)은 관직에 있는 자가 자신의 권한을 남용하여 백성들을 사적인 일에 동원하고 고통스러운 노동에 종사하게 하던 행위를 일컫는다. 이는 공적인 역(役)의 범위를 벗어나 개인의 이익이나 편의를 위해 민력을 수탈하는 대표적인 폐단 중 하나였다. 한자어의 의미를 풀이하면 부릴 사(使) 자와 괴로울 고(苦), 부릴 역(役) 자가 결합하여 억지로 시키는 고통스러운 부역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조선 시대에 이르러 사사고역은 지방 수령이나 향리들이 자신의 가옥 수리, 묘지 관리, 또는 개인적인 잔치나 물품 운반 등에 농민들을 강제로 동원하는 형태로 빈번하게 발생하였다. 국가가 규정한 정규 부역인 군역이나 요역 외에 추가적으로 부과되는 이 비공식적인 노동은 농번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집행되는 경우가 많아 농업 생산성에 큰 타격을 입혔다. 특히 지방관의 권한이 절대적이었던 변방이나 오지에서 그 수탈의 강도가 더욱 심했다.
이러한 수탈 행위는 백성들의 삶을 극도로 피폐하게 만들었다. 정당한 대가 없이 가혹한 노동에 시달린 농민들은 자신의 토지를 경작할 시간을 빼앗겼고, 이는 곧 가계의 몰락과 빈곤으로 이어졌다. 사사고역을 견디다 못한 일부 백성들은 정착지를 떠나 유랑민이 되거나 산속으로 들어가 화전민이 되었으며, 이는 국가의 조세 기반인 호적에서 이탈하는 결과를 초래하여 국가 재정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조선 정부는 이러한 폐단을 막기 위해 암행어사를 파견하여 실태를 조사하거나, 법전인 『경국대전』이나 『대전회통』 등을 통해 관직자의 사적 민력 동원을 엄격히 금지하였다. 그러나 중앙의 통제력이 약화된 시기에는 지방 관아의 부정부패와 결탁하여 이러한 규제들이 유명무실해지기 일쑤였다. 특히 19세기 세도정치 시기에는 관직 매매가 성행하면서 투자한 비용을 회수하려는 지방관들에 의해 사사고역이 더욱 악랄한 방식으로 자행되었다.
사사고역은 단순히 개인의 고통을 넘어 당시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이는 민중들의 저항 의식을 고취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며, 임술민란을 비롯하여 19세기 후반에 빈번하게 발생했던 농민 봉기의 주요한 배경 원인 중 하나로 작용하였다. 오늘날 사사고역이라는 용어는 부당한 권력 행사를 통한 노동 착취의 역사적 사례로서, 공공의 이익을 우선시해야 하는 공직 윤리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사례로 인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