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나다 유키타카(真田幸隆)는 일본 센고쿠 시대의 무장이자 시나노국 사나다 가문의 실질적인 기틀을 마련한 인물이다. 본래 시나노의 호족인 운노(海野) 가문 출신으로 알려져 있으나, 가문의 몰락 이후 사나다 성을 사용하며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그는 다케다 신겐의 가신으로서 뛰어난 지략을 발휘하여 '다케다 24장' 중 한 명으로 꼽히며, 훗날 사나다 마사유키와 사나다 노부시게(유키무라)로 이어지는 사나다 가문의 전략가적 가풍을 정립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유키타카의 초기 생애는 영지 회복을 위한 투쟁의 연속이었다. 1541년 운노 타이라 전투에서 다케다 노부토라와 무라카미 요시키요 등의 연합군에 패배하여 영지를 잃고 고즈케국으로 망명하였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고 가문의 재흥을 노렸으며, 다케다 노부토라를 축출하고 실권을 잡은 다케다 신겐의 가신으로 들어가는 결단을 내렸다. 이는 과거의 적이었던 다케다 가문의 힘을 빌려 자신의 본래 영지인 시나노국을 되찾기 위한 현실적이고 전략적인 선택이었다.
그는 무력보다는 지략과 모략에 능한 장수로 이름을 떨쳤다. 특히 1551년, 다케다 신겐이 두 차례나 공격했으나 함락시키지 못해 고전했던 요새 도이시 성을 단 하루 만에 함락시킨 공적은 그의 명성을 확고히 했다. 유키타카는 성 내부의 균열을 이용한 내응 공작과 심리전을 적절히 구사하였으며, 이 승리를 통해 다케다 가문 내에서 확고한 신뢰를 얻음과 동시에 잃어버렸던 옛 영지를 상당 부분 회복하는 데 성공했다.
유키타카는 다케다 가문의 시나노 침공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탄조추(彈正忠)라는 관직명을 사용해 '사나다 탄조'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는 단순히 전투 현장에서 싸우는 장수에 그치지 않고,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힌 시나노 지역의 국인 영주들을 포섭하고 회유하는 외교적 역량을 발휘했다. 이러한 그의 능력 덕분에 사나다 가문은 다케다 가문의 외사(外樣) 가신이라는 불리한 위치에서도 가문의 독립성과 위상을 지켜낼 수 있었다.
1574년 유키타카가 사망한 후 가독은 장남 사나다 노부쓰나가 계승했으나, 나가시노 전투에서 노부쓰나와 차남 마사테루가 동시에 전사하면서 가문은 위기에 처했다. 그러나 유키타카의 지략을 가장 잘 물려받았다고 평가받는 삼남 사나다 마사유키가 가문을 이어받으며 사나다 가문의 명맥은 계속되었다. 유키타카가 생애 전반에 걸쳐 보여준 끈질긴 생존 본능과 정보 수집 능력, 그리고 유연한 전략적 사고는 훗날 사나다 가문이 전국시대의 거친 풍파 속에서도 멸망하지 않고 살아남는 원동력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