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춘석(朴椿石, 1927년 ~ 2010년)은 대한민국의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로, 한국 가요계의 황금기를 이끈 거장이다. 본명은 의병(義秉)이며 서울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음악적 재능을 보여 봉래초등학교와 경기중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기악과(피아노 전공)에 입학했으나 중퇴하였다. 이후 신세기레코드와 지구레코드 등에서 전속 작곡가로 활동하며 평생 동안 약 2,700여 곡에 달하는 방대한 작품을 남겨 '한국 가요의 살아있는 역사'로 불렸다.
그는 초기에는 주로 재즈와 경음악 분야에서 피아노 연주자로 활동하며 세련된 서구적 감수성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1950년대 중반 이후 본격적으로 대중가요 작곡에 투신하면서 한국인의 고유한 정서인 '한(恨)'과 슬픔을 멜로디에 녹여내기 시작했다. 그의 음악적 스펙트럼은 정통 트로트에서부터 블루스, 스탠더드 팝에 이르기까지 매우 넓었으며, 이는 한국 대중음악의 외연을 확장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박춘석은 이른바 '박춘석 사단'이라 불리는 수많은 스타 가수를 발굴하고 육성한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엘레지의 여왕' 이미자와의 협업은 한국 가요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업적이다. 그는 이미자를 위해 <동백아가씨>, <기러기 아빠>, <섬마을 선생님> 등 수많은 히트곡을 작곡했다. 또한 패티 김의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 남진의 <가슴 아프게>, 나훈아의 <물레방아 도는데>, 문주란의 <동숙의 노래>, 하춘화의 <영암 아리랑> 등 당대 최고의 가수들과 호흡을 맞추며 가요계의 독보적인 존재로 자리매김했다.
그의 작곡 스타일은 화려한 기교보다는 대중의 심금을 울리는 서정적이고 애절한 선율이 특징이다. 그는 가수 개개인의 음색과 장점을 정확히 파악하여 그에 최적화된 곡을 선사하는 탁월한 감각을 지녔다. 1994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 16년 동안 투병 생활을 이어가다 2010년 83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공로를 기려 옥관문화훈장과 은관문화훈장을 추서했으며, 그는 오늘날까지 한국 음악계의 위대한 스승으로 추앙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