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천(朴順天, 1899~1983)은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이자 저명한 여성 정치가이다. 본명은 박명련(朴明蓮)이며, 소연(小硏)이라는 호를 사용하였다. 경상남도 동래에서 태어난 그는 이화학당을 졸업한 후 일제강점기 동안 항일 운동과 여성 교육에 헌신하였다. 그는 한국 현대 정치사에서 여성으로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며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1919년 3·1 운동 당시 마산에서 독립 만세 운동을 주도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여자대학 사회사업과에서 수학하며 근대적 여성 의식과 사회 구조에 대한 식견을 넓혔다. 귀국 후에는 마산 의신여학교 교사 등으로 근무하며 교육자로서 인재 양성에 힘썼으며,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 향상과 문맹 퇴치를 위한 계몽 활동에 앞장섰다.
해방 이후에는 정치권에 본격적으로 투신하여 대한부인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된 것을 시작으로 총 5선 의원을 지내며 의정 활동을 펼쳤다. 특히 이승만 정권의 장기 집권 시도에 맞서 야당 정치인으로서 선명한 반독재 투쟁을 전개하였다. 그는 민주당의 창당 주역 중 한 명으로서 활동하며 한국 야당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핵심 인물로 부상하였다.
1960년대에는 통합 야당인 민중당의 대표최고위원을 역임하며 한국 정당사상 최초의 여성 당수라는 기록을 남겼다. 박정희 정권 초기 한일 국교 정상화 반대 운동 등 굵직한 시국 사건의 중심에서 야권을 이끌었으며, 강인한 투쟁력과 포용력을 동시에 갖춘 지도자로 인정받았다. 실천적인 지도력과 강직한 성품 덕분에 '한국 야당의 어머니'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정계 은퇴 후에도 국정자문위원 등을 맡으며 사회 활동을 이어가다 1983년 향년 84세를 일기로 별세하였다. 그의 생애는 한국 여성의 정치 참여 가능성을 확장한 선구적인 사례로 꼽히며, 격동의 한국 근현대사 속에서 민주화와 여성 권익 신장을 위해 투쟁한 상징적인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