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운(朴商雲, 1891~1941)은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이다. 본관은 밀양이며, 강원도 횡성군 횡성면 읍하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고종 황제의 인산과 3·1 운동의 영향으로 전국적으로 확산되던 독립 만세 운동에 투신하여 민족의 자주독립 의지를 대외적으로 알리는 데 앞장섰다.
1919년 4월 1일, 박상운은 횡성 장날을 이용하여 전개된 대규모 독립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당시 횡성면 장터에는 수천 명의 군중이 모여들었으며, 박상운은 강기형 등 동지들과 함께 시위대의 선봉에 서서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 만세를 외쳤다. 시위대는 횡성면사무소와 일본 경찰 헌병대 분소로 몰려가 일제의 강압적인 식민 통치에 항의하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시위 도중 박상운은 일제 헌병에 의해 강제 연행되었으며, 이후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5월 2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및 소요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으나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다. 그러나 같은 해 6월 28일 경성복심법원에서 항소가 기각되어 형이 확정되었고, 서대문형무소에서 모진 고초를 겪으며 옥고를 치렀다.
출옥 이후에도 박상운은 일제의 감시 속에서 민족의식을 잃지 않고 조국의 독립을 염원하며 생활하였다. 그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지역 사회의 일원으로서 항일 정신을 간직하며 살아가다 1941년 5월 15일,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하였다. 그의 투쟁은 횡성 지역 독립운동의 상징적인 사건으로 기록되어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고 후세에 알리기 위해 1983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으며, 이어 1990년에는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박상운의 행적은 국가보훈부의 독립유공자 명단에 공식 등재되어 있으며, 그의 숭고한 희생과 애국심은 오늘날 대한민국 독립 운동사의 중요한 유산으로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