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온공주(明溫公主, 1810~1832)는 조선 제23대 국왕 순조와 순원왕후 김씨 사이에서 태어난 장녀이다. 1810년(순조 10) 10월 13일에 출생하였으며, 순조의 자녀 중 가장 먼저 태어난 공주로서 부왕과 모후의 극진한 사랑을 받았다. 효명세자의 친동생이며, 복온공주와 덕온공주의 언니이기도 하다.
1817년(순조 17)에 명온공주로 정식 봉해졌으며, 1823년(순조 23) 안동 김씨 김조순의 조카인 김현근(金賢根)과 혼인하였다. 김현근은 진안위(晉安尉)에 봉해졌으나, 두 사람 사이에 친자녀는 없었다. 이 혼인은 당시 강력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던 안동 김씨 가문과 왕실의 유대를 강화하는 성격을 띠고 있었으며, 순조는 사위인 김현근을 매우 아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명온공주는 어린 시절부터 몸이 약해 병치레가 잦았으나, 성품이 온화하고 글씨에 소질이 있었다. 특히 동생인 복온공주, 덕온공주와 더불어 한글 서체인 궁체의 발달에 기여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공주가 남긴 한글 편지와 서예 작품들은 당시 왕실 여성들의 국문 사용 실태와 수준 높은 문해 능력을 보여주는 중요한 역사적 사료로 가치를 지닌다.
1832년(순조 32) 음력 6월 13일, 명온공주는 23세의 이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이는 오빠인 효명세자가 요절한 지 2년 만에 일어난 비극이었으며, 같은 해 6월 10일에는 동생인 복온공주가 먼저 하세한 직후였다. 연이은 자식들의 죽음은 순조와 순원왕후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슬픔을 안겨주었으며, 왕실 전체에 큰 침체기를 가져왔다.
사후 명온공주는 경기도 양주 해등촌면(현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 일대에 안장되었다. 남편 김현근은 공주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왕실의 사위로서 예우를 받으며 관직 생활을 이어갔다. 명온공주의 삶은 조선 후기 왕실 가족들이 겪었던 연이은 요절과 슬픔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며, 그녀가 남긴 문학적 흔적은 조선 시대 왕실 여성 문화 연구의 소중한 자산이 되고 있다.